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 한경 DB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 한경 DB
[ 김봉구 기자 ] 지난 27일 교육부 발표는 단일 국정 역사교과서의 일선 학교 적용에서 ‘1년 연기, 선택권 부여’로 물러섰다는 게 지배적 평가였다. 하지만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당장 새해부터 국정교과서를 시범 사용할 ‘연구학교’ 지정이 의외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정교과서 현장 적용방안에 대해 “2017학년도에는 지정된 연구학교는 국정교과서를, 다른 학교에선 기존 검정교과서를 주교재로 사용한다. 2018학년도부터는 국·검정교과서를 함께 사용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 교사들 "연구학교 지정, 솔깃할 수 있어"

대중의 눈길은 ‘2018학년도’와 ‘국·검정 혼용’에 쏠렸다. 당초 방침에서 두어 발 물러선 유예·절충안으로 받아들였다. 2018학년도로 넘어가면 국정교과서 운명이 차기 정부 손에 맡겨진다는 점을 들어 “사실상 폐기 수순”이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그러나 일선 교사들 관점은 달랐다. 교사들은 ‘2017학년도’와 ‘연구학교’의 무게를 가볍지 않게 봤다. 연구학교 지정 문제로 학내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우려했다.

영남권 고교의 30대 평교사 정모 씨는 “승진이 목전에 있는데 연구학교 관련 가산점이 없는 교사는 대중적 가치관에 위배되더라도 (국정교과서 사용 연구학교 지정에) 동조할 수 있다”면서 “국정교과서 관련이 아닌 일반적 연구학교의 경우는 웬만하면 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자신을 현직 교사로 소개한 누리꾼도 온라인 커뮤니티에 “섬뜩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연구학교로 지정되면 학교로선 예산 확보, 선호도 상승효과가 있고 교사 역시 승진 가산점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연구학교 프로그램은 대입 학생부종합전형에 반영되는 등 입시에 유리해 학생·학부모도 반기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반대 여론이 높지만 연구학교 지정시 실질적 혜택이 주어져 국정교과서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2년여 전 우편향 논란을 낳은 교학사 교과서 때처럼, 국정교과서 채택 학교를 한 손으로 꼽는 ‘참사’가 재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뜻이다.
지난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적용방안을 발표하는 이준식 장관. / 한경 DB
지난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적용방안을 발표하는 이준식 장관. / 한경 DB
◆ 교육부 vs 진보교육감 대립각 재연되나

조희연(서울시)·이재정(경기도) 교육감 등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곧바로 보이콧을 선언했다. “연구학교 지정은 국정교과서 채택을 위한 꼼수”라는 이유에서다.

교육부령 ‘연구학교에 관한 규칙’은 “교육부 장관은 교육정책 추진·교과용도서 검증 등의 목적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교육감에게 연구학교 지정을 요청할 수 있다”, “교육감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요청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교육감들은 국정교과서의 경우 ‘특별한 사유’에 해당돼 연구학교 지정에 불응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 문구에 대한 유권해석은 입장에 따라 갈릴 소지가 있다. 자칫 교육부와 진보 교육감의 충돌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례가 있다. 2014년 자율형사립고 폐지 논란 당시 교육감과 교육부 장관이 ‘협의’한다는 문구가 쟁점이 됐다. ‘협의’를 낮은 수준으로 해석한 교육감은 자신에게 결정 권한이 있다고 본 반면 ‘동의’로 풀이한 교육부는 장관이 거부권을 갖는다며 맞섰다.

당시엔 교육감의 지정취소 신청에 장관이 동의하지 않으면서 자사고 폐지가 백지화됐었다. 힘겨루기에서 교육부가 이긴 셈이었다. 이후에도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재정 부담에 대한 견해차로 정부와 진보 교육감들은 격렬하게 부딪쳤다.

다만 지금은 역학관계가 달라졌다. 탄핵 정국으로 국정교과서 추진 동력을 상실한 교육부가 연구학교 지정을 밀어붙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연구학교를 신청하는 학교는 적극 수용해 지원하겠다. 교육감들에게는 최대한 협조를 구해나갈 것”이라고만 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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