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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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JP모간자산운용이 한국법인 대표를 새로 임명했다는 보도자료를 접한 많은 기자의 첫 반응은 “대표가 여자야?”였다. 말단 운용역에서 대표이사에 이르기까지 전형적인 ‘남초(男超) 집단’의 하나가 운용업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1973년생이었다.

국내 운용업계에서 ‘최연소 여자 대표’라는 수식어를 단 이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박정연 JP모간자산운용 대표(사진)의 첫인상은 ‘모범생’ 그 자체였다. 또박또박 세련된 말투로 글로벌 경제 흐름을 설명하는 모습이 특히 그랬다.

“아휴…제 첫인상이 그렇다는 건 아는데요, 사실 굉장히 무디고 무난한 성격이에요. 다만 일을 할 때는 좀 달라지는 경향이 있어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바뀌죠. 예를 들어 사업에 대해 쓴소리나 지적하는 걸 주저하지 않아요. 마음에 부담을 느낄 때도 많지만 ‘지금 이걸 말하는 게 나의 의무’라고 생각하거든요.”

자꾸 아니라고 했지만 이런 얘기를 들어보면 그는 역시 모범생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다채로운 경력과 전직

직장생활은 1997년 삼성물산에서 시작했다. 경영관리·전략기획실에서 일했다. 서울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회사에서 처음으로 회계를 배웠다. 기초지식이 모자라 퇴근 후 집에서 별도로 책을 봤다. “만약 제가 학교 다닐 때 회계를 배웠으면 정말 재미가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배우니까 전혀 모르는 분야를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더라고요. 의외로 적성에 맞다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회계사 자격증을 땄어요.”

그는 2000년부터 국내 대형 회계법인인 딜로이트안진에서 회계사로 일하다가 2005년 외국계 증권사인 UBS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1년 만에 운용업계로 다시 업종을 바꿨다. 당시 JP모간자산운용은 한국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회사를 만들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JP모간자산운용 설립 멤버이자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됐다.

“회사를 밑바닥부터 새로 세우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얼마나 어려울지에 대해선 전혀 감이 없었어요. 모르니까 용감했던 거죠. 그 뒤로 조직을 만드는 역할은 안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어쩌다 보니 맡아온 역할이 계속 팀 조직이었어요.”

2010년에는 홍콩지사로 자리를 옮겼다. JP모간자산운용은 당시 홍콩에 아시아태평양 전략기획팀을 새로 설립할 계획이었다. 미국 본사의 상품전략팀이 짠 전략을 아시아 시장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 대표가 팀장으로 일을 추진했다. 그는 “미국은 규모가 커도 단일시장이지만 아시아는 홍콩 대만 싱가포르 한국 일본 등이 모두 다른 시장”이라며 “아시아 시장이라는 큰 틀 안에서 지역별 전략을 짜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운용업계의 문제

[人사이드 人터뷰] 박정연 JP모간자산운용 대표, 국내 첫 여성 대표라는 것보다 '리더로 잘할 수 있나'만 고민
박 대표가 홍콩에서 가장 놀란 것은 자유로운 환투자였다. 홍콩시장의 개인투자자가 한국과 비교해 월등하게 많은 자산을 외화자산과 해외 자산에 투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글로벌 투자에 관심도 적고 실제 투자 비중도 낮은 편이었다. 그는 ‘남이 사기 전에는 절대로 안 산다’는 것 역시 한국 운용업계의 바람직하지 않은 속성이라고 지적했다.

“보통 한 펀드가 미국에서 많이 팔리면 그 다음엔 유럽으로 가요. 그리고 아시아, 한국으로 옮겨갑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올 때면 너무 늦은 경우가 많아요. 장기적인 매력은 있더라도 꼭지에 매입해 사자마자 가격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나쁜 경험이 쌓이다 보면 해외 투자에 매력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분산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그는 “분산투자는 개별 투자자산이 서로 연계되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눈에 보이는 실적에만 무게를 두면 사실상 분산투자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 투자를 하는 경우에도 원화로 헤지된 상품을 고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 경우 국내 자산과의 분산투자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퇴직연금에 대한 국내 투자자의 둔감증도 꼬집었다. 펀드는 가입한 다음날부터 가격 변화를 체크하면서도 퇴직연금은 1년이 지나도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퇴직연금 자산 80%가량이 예금에 쏠려 있는 것 역시 문제라고 했다. 물가 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결국 자산 규모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입자들이 퇴직연금을 적극적으로 운용하기 힘들다면 디폴트 옵션을 도입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가입자 대신 전문가인 자산운용사가 고객의 성향에 맞는 상품에 투자하는 제도다.

“고객들에게 ‘투자가 쉽다’라고 말하는 건 옳지 않아요. 투자는 굉장히 많은 공부를 요구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그걸 쉽다고 하면 안 되죠. 왜 해외 투자와 퇴직연금이 중요한지, 분산투자의 정확한 개념은 무엇인지 제대로 된 투자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CEO가 된다는 것

처음 한국법인 대표직을 제의받았을 때 제법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회사 측에서 제시한 검토 기간은 2주였지만 그가 답변을 보낸 것은 3주가 지난 뒤였다. 한국법인에서 일하다가 홍콩으로 갔지만 대표로 다시 돌아올 거라곤 상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제안을 그냥 넘기면 ‘다음에 또 기회가 찾아올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걱정스러운 대목도 많았지만 내심 어느 정도는 (회사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제가 여자라는 점보다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고 리더로서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만 고민했습니다.”

그런 그가 생각하는 리더는 어떤 모습일까. 박 대표는 ‘외로운 자리’라고 말했다. “우선 모든 조직원과 ‘미주알고주알’ 식으로 소통할 수는 없어요. 나누는 정보도 어느 정도 제한적이죠.”

팀장만 해도 팀원들과 공유하는 목표가 있다. 하지만 대표가 돼 조직을 보면 팀마다 서로의 목표가 충돌하는 것을 조율해야 한단다. 그 과정에서 악역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악역을 도맡는 외로운’ 대표직을 맡은 지 어느덧 반 년이 지났다. ‘스스로에게 몇 점을 주겠느냐’고 묻자 그는 “제가 대답해도 돼요?”라고 되묻곤 한참 웃었다.

“가장 두려운 게 뭔 줄 아세요? 제가 이른바 ‘뻘짓’을 했는데 직원들이 아무도 그걸 지적해주지 않는 거예요. 처음 와서 사람들에게 ‘내 의견에 반박해도 기분 나쁘지 않다. 가장 원하는 것은 열띤 토론’이라는 걸 적극적으로 알렸어요. 그런데 제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아직은 한계가 있어요. 직급 대신 이름을 부르는 등 좀 더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선 점수를 줄 수 있겠네요.”

하지만 최고경영자(CEO)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적이라고 똑부러지게 말했다. 모범생다운 결말이었다. “원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일단 턴어라운드했다고 생각해요. 내년에는 더 좋은 성과를 보여드릴 겁니다.”

■ 내년 증시 전망은 "주식은 국내보다 미국…채권은 회사채 유망"

올해는 유달리 국내 주식형펀드(액티브)에 가혹한 한 해였다. 대형주 위주 장세가 펼쳐지면서 지난해 좋은 실적으로 돈을 끌어모았던 중소형주 펀드 수익률이 곤두박질쳤다. 부동산이나 채권, 혹은 종목이 아니라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쪽에도 자금이 몰렸다. 내년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까.

박정연 JP모간자산운용 한국법인 대표는 “상당히 변수가 많은 한 해가 될 것”이라며 “글로벌 경제가 점진적으로 좋아지기 때문에 경기민감주가 유망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역적으로는 국내보다는 미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미 주가가 많이 오른 상태지만 경기 회복세를 감안하면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데이비드 레보비츠 JP모간자산운용 글로벌시장 전략가 역시 “내년에는 시장을 움직이는 동력이 유동성에서 경제성장으로 바뀔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증시가 큰 변화를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채권은 국채보다 고수익(하이일드)채권이나 신흥국채권이 더 낫다는 분석이다. 금리 인상이 국채에는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미국 우량 기업의 회사채나 하이일드채권의 경우 더 많은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박 대표가 인터뷰 내내 강조했듯이 분산투자다. 박 대표는 “위험 분산을 위해 국내 자산과 해외 자산, 상호 관련성이 없는 자산 등을 고루 담아야 한다”며 “개인이 하기 어렵다면 자동적으로 자산배분을 해주는 멀티에셋펀드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23일 기준 국내 39개 멀티에셋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3.44%다. 국내 주식형펀드(-5.17%, 인덱스펀드 제외) 수익률을 훌쩍 뛰어넘는다. 5년 수익률은 31.33%로 장기에 강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