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좋은 임차인이 건물 가치 결정…불황기엔 장기임대 전략 짜야"
“오피스와 달리 상업시설은 시골길의 허름한 건물이라도 웬만하면 세입자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가게를 운영하죠. 공실로 남았다는 건 임대인이 시장상황과 타협하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노윤영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 리테일임차자문팀 이사(사진 왼쪽 세번째)는 불황기에 임차인을 들일 때는 상업시설 임대인들이 보다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좋은 임차인이 건물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다. 유명하고 인기있는 브랜드 매장을 유치하면 건물의 가치가 올라가고 새로운 상권까지 주도할 수 있다. 물론 악성 임차인을 만나면 수익은 악화되고 자산 가치도 떨어진다. 국내외 브랜드의 매장 임차 과정을 자문하는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리테일임차자문팀은 “불황의 시대에는 건물주가 세입자에 대해 분석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기 임대·매출액 연동 임대료 ‘확산’

미국계 종합부동산컨설팅 업체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는 부동산 자산 인수 및 매각, 임대차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세계 60여개국에 260여개 지사를 보유하고 있어 국내에 진출한 해외 브랜드 및 기업이 매장 출점을 자문하는 경우가 많다. 상업시설 임대차 관련 서비스에 강점을 갖고 있다. 글로벌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인 H&M과 자라가 쿠시먼의 임차자문팀을 통해 국내에 주요 매장을 냈다. 역시 이 팀의 도움으로 문을 연 캐릭터숍 ‘라인프렌즈’ 이태원점은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과 한강진역 사이에 새로운 상권을 조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쿠시먼의 임차자문팀이 가진 노하우는 무엇일까. 팀을 이끄는 노윤영 이사는 건물주나 세입자 모두 일단 유명 브랜드들이 선호하는 입지부터 분석해보라고 조언한다. 노 이사는 “과거에는 무조건 유동인구가 많은 자리를 선호했다면 요즘은 브랜드 특성에 맞춰 가장 알맞은 입지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30대 여성을 주 소비층으로 겨냥한 브랜드는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을, 중국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삼은 경우 명동에 자리잡는 식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파급력을 중요시하는 국내 브랜드는 대로변 입지보다 이면도로 등 독특한 입지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신진 디자이너 편집숍인 ‘에이랜드’는 홍대 인근과 명동 등 대형 상권을 택하면서도 유동인구가 적은 이면도로에 대형 매장을 여는 전략을 택했다. 양승한 차장(맨 오른쪽)은 “국내 중소 브랜드들은 높은 임대료 등 비용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려워 자기만의 색깔에 맞춰 상권을 개척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유명 브랜드 매장은 건물주에겐 최고의 세입자로 꼽힌다. 개인에 비해 명도, 권리금 관련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서다. 쿠시먼 임차자문팀에 따르면 해외 브랜드들은 10년 이상 장기계약과 매출액 대비 일정 비율을 임대료로 책정하는 시스템을 선호한다. 양 차장은 “미국 브랜드는 매장 면적이 전용면적 660㎡(200평) 이상이면 10년 이상, 유럽 브랜드는 최대 30년까지도 장기계약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초기 인테리어 투자비용 등을 감안해서도 10년 이상의 장기임대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시장에 처음 장기임대 방식을 도입한 곳은 미국계 커피전문업체인 스타벅스다. 스타벅스는 1990년대 말 이화여대 앞에 1호 매장을 내면서 5년짜리 장기계약을 요구했다. 통상 2년 단위 임대차 계약이 일반적이었던 국내 시장에선 “너무 길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건물주가 먼저 장기계약을 제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 이사는 “계약기간을 짧게 잡고 세입자를 바꾸면서 임대료를 올리는 이점을 포기해야 한다”며 “대신 안정적으로 세입자를 유치해 임대료 걱정을 잊고 건물의 가치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매출액 대비 수수료 형태로 유동적인 임대료를 받는 방식도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예전에는 쇼핑몰에서만 적용되던 방식이지만 점차 가두상권(스트리트형 점포)에서도 이를 도입하는 매장이 늘고 있다. 노 이사는 “고정 임대료를 포기하는 대신 좋은 브랜드 매장을 유치해 건물 가치를 올리고, 좋은 조건으로 매각에 성공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며 “입지가 좋은 매장이라도 건물주가 기존 임대료 방식만 고집하다 보면 불황기 공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불황기, 임대료보다 세입자 안정성

내년도 경제전망이 불확실한 가운데 개인이나 기업 건물주는 어떤 임대전략을 써야 할까. 노 이사는 “숫자는 잠시 접어두라”고 당부했다. 수익률보다는 안정성과 지속성에 주목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우리팀을 찾아온 한 건물주는 본인이 생각한 임대료보다 더 높은 임대료를 내겠다는 브랜드와 계약을 맺었지만 결국 임대료가 제때 들어오지 않아 고민 중”이라며 “임대료를 더 낮춰도 좋으니 안정적으로 장기간 계약할 수 있고, 건물 이미지도 높여줄 세입자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임차자문팀은 건물주가 업황이나 세입자들에 대해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좋은 임차인을 유치하기 위해선 시장 트렌드를 읽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영실 과장(오른쪽 네번째)은 “건물의 가치는 세입자와 함께 가는 것”이라며 “꾸준히 매출을 유지하는 세입자가 누구일지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황 중에도 새롭게 떠오르는 브랜드와 업체가 있고, 시장의 강자는 어떤 형태로든 나오기 때문이다. 신 과장은 “아웃도어 브랜드가 한창 인기를 끌 때 골프웨어는 불황이었지만 지금은 역전됐다”며 “끊임없이 변화하긴 하지만 상권을 주도하는 브랜드는 항상 있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양 차장은 “쇼핑몰은 임차인을 들일 때 세입자 다른 매장의 매출을 검증한다”며 “개인 건물주나 상가 임대인들도 세입자의 매출이 책정한 임대료를 낼 수 있는 수준인지 미리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