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쏟아지는 SUV 신차만 무려 10종에 달합니다. 연간으로 치면 120종의 신차가 등장하는 셈이니 제품 인지도를 높이기가 상당히 어렵죠. 그래서 지금은 무조건 SUV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칼럼]SUV 신차 폭포에서 살아남으려면

지난 18일, 중국 3대 도시인 광저우에서 만난 둥펑르노 관계자의 설명이다. 뒤늦게 중국에 진출한 르노 입장에선 초기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게 관건이고, 이를 위해선 제품부터 SUV가 돼야 한다는 얘기다. 둥펑르노가 진출 첫 제품으로 소형 CUV '카자르'를 선택한데 이어 두 번째 제품으로 '콜레오스(국내명 QM6)'를 내놓은 배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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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중국 내 SUV의 성장세는 놀라울 만큼 거세다. 연간 2,000만대의 승용차 시장에서 세단은 성장을 멈춘 반면 SUV는 해마다 50% 이상씩 증가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14회 광저우모터쇼 주요 무대에 올라간 차종은 거의 대부분이 SUV다. 둥펑자동차의 AX5, 푸조 4008, 이치자동차의 R7 및 X40, 비야디의 왕조 시리즈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비야디(BYD)는 SUV에 '왕조(Dynasty)' 브랜드를 도입, 과거 중국 역사를 이어왔던 나라 이름의 차명으로 주목을 끌었다. 바로 '당(唐)', '송(宋)', '원(元)'이다. 중국 소비자의 역사적 자부심을 겨냥한 토종 SUV로 시선을 끌어내는 셈이다. 특히 소형 SUV '송'에는 최장 300㎞ 주행이 가능한 EV 버전도 내놔 저력을 과시했다. 질리자동차의 CUV인 GS, 중국 토종 SUV 강자인 리판자동차의 하발 H9 및 H2, 그리고 또 다른 토종 브랜드 베누시아 T90, 광자동차의 트럼프치 브랜드의 GS8 등 말 그대로 SUV가 모터쇼 전체를 도배하는 흐름을 나타냈다. 둥펑시트로엥의 C3-XR, 지앙자동차의 서펑 S3, 창안자동차의 CS15 등 그야말로 SUV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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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SUV가 쏟아지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 소비자들의 '안전 심리' 덕분이라는 게 현지 전문가의 설명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국차 관계자는 "중국 소비자가 큰 차를 좋아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 최근 SUV 선호도는 덩치가 크면 안전하다고 맹신하는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세단보다 크기에서 앞선 SUV가 상대적으로 자신을 더 많이 보호해준다는 믿음이 강하다"라는 분석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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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중국 소비자의 안전 심리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됐다. 빠른 개발에 따른 부작용으로 갖가지 대형 사고들이 터지자 안전은 국가 또는 사회가 아닌 스스로 지켜야 하는 항목으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덩치 큰 SUV는 개별 운전자의 보호막 이미지를 형성하며 시선을 끌었고, SUV 시장의 가파른 성장으로 연결됐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SUV를 찾는 소비자의 증가는 저렴한 중국 내 토종 SUV의 성장을 견인했고, 소비패턴의 변화가 세단의 정체로 나타났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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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요인으로 형성된 SUV 성장 흐름에서 단연 주목받는 곳은 토종 브랜드다. 합작 브랜드 제품보다 가격이 많게는 1,000만원 이상 저렴하기 때문이다. 현지 관계자는 "여전히 중국의 신규 승용차 수요의 60% 정도가 생애 최초 자동차 구매자인데, 이들이 안전에 대한 심리적 요인으로 SUV를 구매할 때는 가격이 저렴한 토종 제품이 채택될 수밖에 없다"며 "합작사 입장에선 가격 면에서 토종 브랜드와 경쟁 자체가 불가능해 중국 사업이 점차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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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합작사도 편의품목을 최대한 덜어내고, 국내 소비자 시각에서 보면 일명 ‘깡통차’라 부를 만큼의 제품을 내놓고 있다. 오로지 가격 경쟁을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경우 '합작사=프리미엄'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어 섣불리 도입하기도 쉽지 않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서도 합작사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자칫 떨어져 나갈 수 있어서다. 모터쇼 현장에서 만난 현대기아차 관계자도 "가격 경쟁을 위해 상품성을 낮추면 판매 확대는 할 수 있겠지만 수익성과 브랜드 가치가 낮아져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며 "해결책은 현지 부품 조달에 다른 전략 차종 개발 외에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산 부품이 아닌 현지에서 값 싼 부품을 조달, 맞춤형 제품을 개발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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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경우도 고민이 산더미다. 품질이 떨어질 수 있어 합작 브랜드로는 내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별도 브랜드를 고려하지만 결국은 합작 브랜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묘안 찾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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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국 내 자동차 시장은 생애 최초 구매자의 대거 유입으로 성장하고 있어서다. 한국처럼 타던 차를 바꾸는 대차 시장이라면 프리미엄 브랜드일수록 유리하겠지만 생애 최초 구매자가 지속시킬 성장 기간이 향후 20년 정도라는 예측은 전략의 새판 짜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차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손해를 보더라도 일정 품질 기준 이상의 저렴한 전략 SUV 차종을 지속 투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합작사 생존이 담보되니 말이죠. 모든 고민이 어떻게 하면 가격을 낮출 수 있을까에 맞추어져 있죠. 그리고 이런 고민은 이른바 최고급 프리미엄 브랜드 외 합작사 모두가 고민하는 공통 숙제입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니까요."

그래서 본격적인 중국의 자동차 굴기는 지금부터라는 얘기가 나온다. 합작으로 어느 정도 기술을 확보한 토종 브랜드의 굴기가 합작사를 위협하는 수준에 오르기까지 광저우모터쇼는 남은 시간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광저우(중국)=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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