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등의 가전쇼가 더 이상 전자업체 모임이 아닌 것처럼 모터쇼 또한 자동차만의 축제는 아닙니다." 자동차미래연구소 박재용 소장이 늘 입버릇처럼 던지는 말이다. 실제 올해 1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소비자 가전박람회, 일명 CES의 주인공은 삼성이나 LG, 파나소닉 같은 전통적인 가전 기업보다 오히려 커넥티드와 자율주행 기술을 뽐낸 포드와 BMW, 기아차 등이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칼럼]모터쇼 깜짝 등장, 삼성이 던진 교훈

그리고 당시 칼럼을 썼다. 자동차와 가전은 무조건 만나야 하는 운명이고, 시간의 문제일 뿐 가전업체 또한 모터쇼를 곧 찾을 것이라고…(▶ [칼럼]자동차와 전자기업, 무조건 만나게 되는 이유). 그런데 예상이 들어맞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6 파리모터쇼에 삼성전자가 디지털 VR 체험장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모터쇼를 취재온 입장에서 삼성이 기업 브랜드를 걸고 모터쇼 공간을 차지한 것은 매우 생소했지만 CES를 보면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하지만 재미나는 건 삼성이 들어오는 대신 포드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미 알려져 있듯 포드는 미래 자율주행차의 기업의 사활을 걸고 있다. 다시 말해 포드는 자동차가 아니라 IT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모터쇼보다 가전쇼에 공을 들이는 일이 다반사다. CES는 물론이고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IF, 스페인에서 개최되는 MWC에 빠지지 않는 단골 기업이다. ‘포드가 빠진 모터쇼를 삼성이 채웠다’고 하면 다소 과장이겠지만 IT기업의 모터쇼 참여라는 시각을 견지하면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그리고 ‘삼성’ 글자 옆에는 BMW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 있다. 다시 말해 BMW와 손잡고 ‘자동차의 가전화’를 꿈꾸는 삼성의 전략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셈이다. 물론 전략적 제휴는 LG도 예외가 아니다. LG는 이미 폭스바겐과 IOT 세상을 꿈꾸고 있다. 자동차 안에서 집 안의 가전제품을 작동시키는 것인데, 지난 1월 CES 박람회를 통해 공개한 바 있다.

삼성전자 VR을 경험한 뒤 현장에서 현대차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분명 현대차도 가전기업과 글로벌 경쟁에서 함께 할 파트너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LG전자와 삼성전자가 이미 폭스바겐 및 BMW와 손을 잡았다며 적지 않은 고민이라고 털어 놓기도 했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데, 마땅한 파트너가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적이 때로는 동지가 되고, 동지가 적이 되는 곳이 바로 기업 세계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경쟁을 떠나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에 설립된 '5G자동차협회'다. 5G협회는 BMW와 아우디, 벤츠를 포함해 에릭슨과 화웨이, 인텔, 노키아, 퀄컴 등의 통신기업이 참여한 단체다.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인프라 개발촉진을 위해 구성됐는데, 우버와 구글 등의 새로운 경쟁사에 대응하기 위해 자동차와 통신이 연합군을 형성했다. 개별 기업만 보면 시장에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 관계지만 생존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런 시각이라면 현대차의 고민도 가벼워질 수 있다. 글로벌 시장 대응을 위해 삼성 및 LG전자와 손을 잡고, 다양한 통신 기업에도 러브콜을 보내면 된다. 다시 말해 뭉쳐야 한다는 의미다. 모터쇼에서 만난 현대차 관계자도 비슷한 생각을 감추지 않았다. 자동차는 전문이지만 통신과 IT는 현대차 전문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생각이 열려야 한다. 한 마디로 모든 걸 직접 하겠다는 전략은 오히려 맞지 않는다. 분야별 전문기업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든 걸 다하겠다'는 '가치 사슬(Value Chain)'도 좋지만 열 때는 열어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파리모터쇼의 삼성전자 부스가 던지는 교훈이 아닐까 한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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