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신춘호 농심 회장(당시 사장)은 간부들을 불러 모았다. 신 회장은 그 자리에서 “한국 사람들이 매운맛을 좋아하는데 매운 라면이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된장 라면밖에 없던 시장에 변화를 주자는 얘기였다. 연구진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표준화된’ 매운맛을 찾아나섰다. 다진 양념이 들어간 붉은 소고기국밥이 모델이었다. 깊은 맛, 구수한 맛을 한꺼번에 낼 수 있는 스프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뒤 붉은색 포장지에 매울 ‘신(辛)’자를 크게 박아넣은 라면이 나왔다. 30년째 대한민국 라면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신라면’이었다.
'서른 살' 신라면…매운맛으로 쓴 한국 라면사
◆누적 매출 10조원

1986년 10월2일 나온 신라면. 다음달이면 출시 30년을 맞는다. 신라면은 나오자마자 반응이 좋았다. 얼큰한 국물 맛이 적중했다는 게 농심의 설명이다. 출시 석 달 만에 30억원어치를 팔았다. 이듬해에는 18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삼양식품의 ‘삼양라면’과 농심의 간판 제품이던 ‘안성탕면’을 제치고 1991년 국물라면 시장 1위에 올랐다. 이후 25년간 한 번도 이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신라면은 지난해 말 기준 누적 매출 10조원을 돌파(10조6000억원)했다. 단일 브랜드로는 국내 식품업계 최초다. 누적 판매량은 280억개다. 그동안 가격은 200원에서 780원으로 올랐다.

지난해 국내 매출은 4500억원가량으로, 약 2조원인 국내 라면시장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한국인은 1년에 평균 76개의 라면을 먹는다. 이 중 17개가 신라면인 셈이다. 농심 관계자는 “30년간 단 한 번의 맛 개선이 있었을 뿐 오랫동안 한결같은 맛을 유지한 것이 인기 비결”이라고 말했다.

◆라면 종주국 日서 ‘신라면의 날’

신라면은 해외에서도 유명 제품이 됐다. 미국, 중국, 영국, 일본 등 100여개국에 수출된다. 해외 진출이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라면 종주국 일본 시장에 안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농심은 1981년 도쿄사무소를, 2002년에는 법인(농심재팬)을 세웠다. 법인 설립 후 판매망 확보와 시식행사에 주력하며 한국의 ‘매운맛’을 알렸다. 2012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뒤 한·일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농심은 2010년부터 매년 4월10일을 ‘신라면의 날’로 정해 각종 행사를 연다. 일본어로 숫자 4와 10의 소리를 합치면 ‘뜨겁다’를 의미하는 ‘홋토(ホット)’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데 착안했다. 2013년부터는 키친카(푸드트럭)를 운영해 지금까지 약 15만명의 일본인이 신라면을 맛봤다. 올해 일본법인의 매출 목표는 460억원이다. 중국도 내륙시장을 중심으로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신라면 매출은 5000만달러(약 550억원)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25% 성장했다.

농심 관계자는 “현재 35%인 신라면의 해외 매출 비중을 50% 이상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노정동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