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View & Point] 본래 목표 잃은 기업 성과평가, 직원들 '끝장 경쟁'만  부추겨
남아프리카 초원에는 스프링벅(Springbok)이라는 초식 동물이 산다. 2m 이상 뛸 수 있고, 시속 96㎞로 달릴 수 있다. 떼를 지어 여유롭게 풀을 먹다가 무리 수가 점점 늘어나면 이상한 움직임을 보인다. 앞쪽에 있던 스프링벅이 풀을 모두 먹으면 뒤에 있던 무리들이 먹을 풀이 없어지다 보니 경쟁이 시작된다. 뒤에 있던 스프링벅이 앞쪽으로 가려고 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앞에 있던 스프링벅도 같이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모두 갑자기 전속력으로 뛴다. 풀을 먹기 위해 앞서가던 본래 목적을 잊고 무작정 달리는 모습이 연출된다. 낭떠러지가 눈앞에 있어도 달리던 속도 때문에 멈출 수 없다.

기업에서도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진다. 성과 향상을 위한 제도, 시스템이 오히려 기업의 성공을 막는 걸림돌이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이를 막기 위해 기업은 계속해서 제도와 시스템의 원래 목적과 의도를 상기해야 한다. 원래 목적 및 의도와 엇갈리는 방향으로 제도와 시스템이 작동한다면 멈춰서야 한다. 기업들이 실시하는 성과 평가가 대표적인 예다. 원래 취지는 성과 향상이겠지만, 치열한 내부 경쟁만 부추기면서 평가를 위한 평가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매년 평가와 면담에 엄청난 시간을 쏟아붓지만 정작 평가를 받는 직원들의 사기와 능률은 저하되고 위화감만 조성된다.

지난 ‘노동리뷰’에 실린 ‘인사평가제도의 실태’ 보고서에는 강제 할당 방식으로 평가등급을 배분한다고 응답한 기업 비율이 67.1%에 달했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강제 할당 방식의 활용 비율이 높아 1000명 이상의 대기업 138개 중 103개 기업이 여기에 포함됐다. 이는 열 명으로 구성된 팀의 모든 사람이 열심히 일해서 높은 성과를 올린다 해도 단 두 사람만 높은 등급을 받고 일곱 사람은 중간 등급을 받으며 나머지 한 사람은 나쁜 등급을 받게 되는 평가 방식이다. 때문에 직원들은 다른 회사의 사람들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격렬하게 경쟁하게 된다.

이러한 부작용을 없애려 최근 세계적인 기업들은 성과평가에 대해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지난해 8월부터 직원 8만여명을 대상으로 새로운 인사평가 시스템을 시험 적용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세계 170여개국 30여만명에게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과거에는 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해 차별적 보상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새로운 인사시스템은 직원들의 역량을 개발하고 성과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상대평가를 통해 하위 10%를 해고하던 방침을 없애고, 개인별 절대평가로 바꾸었다.

또한 평가 주기를 1년 1회가 아닌 연중 상시로 바꿨다. 연초에 목표를 설정한 뒤 연말에 한 번 평가하는 방식은 조직의 빠른 변화를 오히려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시로 진행 상황을 점검하면서 개선점 및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고, 실시간 평가를 통해 끊임없이 성과를 개선해 나간다. 평가 채널도 구체적인 피드백을 즉각 받을 수 있도록 바꾸었다. 직원들이 자유롭게 서로에 대한 피드백을 줄 수 있게 되자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소통 분위기가 조성됨은 물론 협업을 통한 시너지를 덤으로 얻게 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이미 2013년 말 “숫자로 매기는 순위를 없애고 질적 평가를 더 자주 하겠다”고 밝혔다. 혁신을 막고 구성원 간의 협력을 방해한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단이다. 이외에도 세계적인 의료기기 기업 메드트로닉, 곡물기업 카킬, 소프트웨어 기업 어도비 등 각 분야 세계 최고기업들의 평가제도가 바뀌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조직원들의 협력을 통해 창조적인 힘을 발휘하게 하려면 그에 맞는 성과 평가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안상희 <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