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ECC. / 한경 DB
이화여대 ECC. / 한경 DB
[ 김봉구 기자 ] 이화여대가 3일 직장인 대상 평생교육 단과대학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공식 철회했다. 지난달 28일 이 단과대 설립을 반대하며 학생들이 본관 점거농성을 벌인 지 한 주 만이다. 학내 문제가 사회적 논란으로 비화되면서 최경희 총장이 결단을 내렸다.

학교 측은 이날 오전 긴급 교무회의를 개최해 이같이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화여대는 앞서 사업 대상 학교로 선정돼 추진해오던 교육부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평단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 확보했던 연간 30억원의 국고 지원도 포기했다.

더 이상 학생들과의 대립 국면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화여대는 공식 입장을 통해 “학생들이 본관 점거농성을 중단하고 학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앞으로 학교 주요정책 결정시 구성원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 거센 반발 부딪친 '불법감금·외부세력' 프레임

이번 사태의 변곡점은 지난달 30일 벌어진 학내 경찰 병력 투입 사태였다. 점거 학생들로 가득 찬 본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교직원들이 구조 요청을 했다는 게 명분이었다. 학교 측도 이례적으로 자교 학생들을 강력 비판했다.

이날 이화여대가 낸 ‘본관 점거 및 불법 감금 사태’와 ‘학내 경찰 진입’에 관한 2건의 공식 자료를 보면 ‘불법 감금’ ‘범법 행위’ ‘인격 모욕’ ‘비이성적 집단행동’ 등의 수위 높은 표현이 눈에 띄었다. ‘외부 세력’이 개입했다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대학생들의 교수 감금 논란은 전례가 있다. 고려대 출교 사태가 그것이다. 외부 세력 개입 문제도 작년 민주노총 시위나 지난달 경북 성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당시 반복해 논란이 불거진 예민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여론은 학교 측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경찰 진압 상황에서 이대생들이 입 모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는 영상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타고 주목받은 탓이다. 결과적으로 학내 사안에, 게다가 여대생들에게 공권력을 투입한 데 대한 비판이 힘을 얻었다.

◆ 돈줄 쥐고 흔드는 정부사업 "터질 게 터졌다"

근본적 문제점은 정부의 대학 재정지원사업 방식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많다. 이번에 이화여대가 선정돼 추진해온 평단사업을 비롯한 대다수 교육부 사업이 “돈줄을 틀어쥐고 대학을 통제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등록금 동결 등으로 재정 압박을 받는 대학들은 지원금을 따내기 위해 학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추진하곤 했다. 이화여대의 경우 앞서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프라임) 사업 추진도 문제가 됐다. 학생들 의사와 무관하게 학과 구조조정이 진행된다는 이유로 반대가 거셌으나 끝내 학교 뜻대로 사업에 선정된 바 있다.

이처럼 학내 불만이 고조된 상황에서 평단사업까지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하자 폭발한 것이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이날 성명에서 “국가 지원금이라는 금전적 유인을 사용해 평생교육 단과대를 캠퍼스에 설립한 것은 대학교육의 목적과 의미를 고려하지 않은 단세포적이고 무책임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사실 이화여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산을 따내기 위해 교육부 제시 방향에 맞춰 인위적으로 대학 내부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학내 갈등을 빚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이미 전국 여러 대학에서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 적 있다. 대학가에선 “이대였기에 이 정도 이슈가 됐을 뿐”이라고 봤다.

◆ 학교의 '학위장사'냐, 학생들 '학벌기득권'이냐

점거농성은 일단락 됐으나 이번 사태의 일부 논점은 현재진행형이다. 앞서 언급한 학내 의사결정구조의 민주적 절차나 교육부 재정지원방식의 문제보다 꽤 복잡한 질문에 속한다.

바로 이번 사태를 학교 측의 ‘학위 장사’로 봐야 할지, 아니면 학생들의 ‘학벌 기득권’으로 볼지의 문제다. 명쾌하게 양자택일 할 성격의 사안은 아니다. 논란의 본질이 학위 장사인 동시에 학벌 기득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래라이프대는 정규 학위를 주는 과정이었다. 직장인 대상이므로 고졸 재직자도 입학할 수 있도록 설계됐었다. 또 하나, 정원외 입학이 가능했다. 일반적 입시전형을 통해 선발되는 이대생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학생과 학부모들은 반대했다.

물론 미래라이프대에 설립될 전공이 기존 남녀 성역할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거나, 재직자전형으로도 수요를 소화할 수 있다는 논리적 반박이 제기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존 이대생과의 ‘구분 짓기’ 논리도 분명 있었다. 고3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누가 어렵게 공부해서 대학에 가겠느냐”며 분개했다. 넓게는 대학사회에 남겨진 논점인 셈이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