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Success Story] '2016 레드햇 서밋' 화이트허스트, 혁신을 말하다
“미래 정보기술(IT)업계의 생존은 ‘오픈소스’ 환경을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지난해 글로벌 오픈소스 소프트웨어(SW)업계 최초로 매출 20억달러(약 2조3290억원)를 달성한 레드햇의 제임스 화이트허스트 최고경영자(CEO·사진)는 IT 산업의 핵심을 오픈소스에서 찾았다. 오픈소스란 컴퓨터 프로그램의 작동원리와 세부설계 등을 모두 공개해 누구든지 쉽게 변형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관심 없는 주제지만 개발자들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 초기 작업에 들여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 노하우까지 일거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픈소스 SW의 가격이 일반 SW보다 저렴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화이트허스트 CEO는 지난달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린 ‘2016 레드햇 서밋’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차세대 산업혁명을 주도할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이 오픈소스 환경에서 대거 개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픈소스를 이해하지 못하면 향후 IT업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였다. 오픈소스에 대한 SW 개발자의 관심을 반영하듯 레드햇 서밋에는 55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기조연설을 끝내고 단상에서 막 내려온 화이트허스트 CEO에게 오픈소스의 의미와 가능성을 들어봤다.

‘암덩어리’ 비난받다 4년 만에 매출 두 배

화이트허스트 CEO는 “오픈소스 SW를 이용하는 기업들은 IT 예산을 20% 정도로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업그레이드도 빨리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SW는 판매업체가 개발 노하우를 독점하고 자체 인력으로만 개선한다. 하지만 오픈소스는 모든 것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러 개발자가 참여할 수 있어 품질과 기능 개선 속도가 훨씬 빠르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컴퓨터 운영체제(OS)인 윈도는 3~4년마다 새로운 버전이 나온다. 하지만 레드햇의 서버 OS인 레드햇엔터프라이즈리눅스(RHEL)는 최소 6개월, 늦어도 1년이면 업그레이드가 이뤄진다. 오픈소스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기능이 나올 때마다 일반에 공개한다면 업그레이드 주기를 훨씬 단축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특정 업체가 내놓은 제품에 종속될 위험이 적다는 것도 오픈소스의 장점으로 꼽힌다.

이론적으로 보면 오픈소스 SW는 공짜로 쓸 수 있다. 하지만 관리는 무료가 아니기 때문에 자체 인력을 두거나 서비스업체를 이용해야 한다. 레드햇은 이 점을 파고들었다. 레드햇은 SW 가격을 받지 않고 회사에 맞춰 변형해주거나 프로그램 업데이트, 궁금점 해소 등에만 돈을 받기로 했다. 이른바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다. 레드햇 관계자는 “RHEL이 제공하는 상용 서버 OS 가운데는 처리속도가 경쟁사의 200분의 1에 불과한 제품도 있다”며 “1년 단위로 서비스 계약을 맺던 고객사들이 계약 기간을 3년 이상으로 늘리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SW 소스를 공개하지 않는 MS의 스티브 발머 전 CEO는 오픈소스 SW가 개발자들의 지식재산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암덩어리’로 묘사

다. 하지만 레드햇은 새로운 SW 개발 생태계를 구축하며 2016회계연도(2015년 3월~2016년 2월)에 오픈소스 SW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20억달러의 매출을 달성했다. 2012회계연도에 10억달러를 넘긴 지 불과 4년 만에 매출이 두 배로 뛰었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전 세계 오픈소스 SW 매출은 619억달러를 기록했으며, 연평균 성장률도 19%에 이른다.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미국은 99%가 리눅스 기반 SW를 도입했다. 리눅스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하고 개발할 수 있는 OS로 오픈소스 SW의 대부분이 리눅스 기반으로 제작된다.

오픈소스 SW의 확산은 AI, IoT, 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산업분야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세계 최대 인터넷업체 구글과 중국의 대형 IT 기업 바이두도 자신들의 AI 소스코드를 공개했다. AI 소스코드를 공개한 기업에는 오픈소스를 맹비난하던 MS도 포함됐다.

대형 클라우드 서비스 회사들도 레드햇 이용

레드햇은 세계 각국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로 사업 확장의 또 다른 전기를 맞았다. 클라우드 서비스란 데이터를 개인이나 개별 기업의 저장장치에 두지 않고 구글 아마존 등이 구축한 대규모 저장센터에 넣어뒀다가 필요할 때마다 빼서 쓰는 것이다. 기업들은 단순 데이터는 물론 전사적 자원관리(ERP), 고객관계관리(CRM) 등 기업경영 시스템까지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대형 클라우드 서비스업체들은 모두 래드헷의 RHEL에 기반한 프로그램을 쓰고 있기 때문에 매출 확대가 기대된다는 분석이다.

레드햇은 RHEL을 통해 클라우드 서비스업체의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자로 성장할 계획도 갖고 있다. 레드햇은 IBM, 델, 화웨이, 인텔 등 170여개사와 함께 오픈소스 클라우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레드햇의 RHEL은 한국에서도 인기다. 2014년 3월 한국거래소가 도입했으며 1·2금융권도 속속 채택하고 있다.

레드햇은 오픈소스 기반 SW 개발이 대세로 자리잡은 시장에 발맞춰 ‘커뮤니티 파워드(community-powered) 마케팅’을 내세우고 있다. 재클린 이니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과거 SW 거래는 개발업체가 일방적으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오픈소스 시대에는 소비자가 직접 SW를 개선하는 주체가 된다”며 “소비자들의 프로그램 개선 참여를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커뮤니티 파워드 마케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니 CMO는 “레드햇의 RHEL과 관련된 회사에는 최고정보책임자(CIO)만 60명에 달하고 직원은 1만명에 이른다”며 “이들을 연결해 더 나은 서비스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려 한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