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긱 경제 (Gig Economy)
1947년 미국 사업가 윌리엄 러셀 켈리는 젊은 전업주부인 중산층 백인 여성이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중개하겠다는 광고를 신문에 게재했다. 이 광고가 나오자마자 수많은 기업과 전업주부로부터 문의가 쇄도했다. 기업들은 여성의 시간제 노동을 선호했으며 여성들도 이 같은 일자리 찾기에 적극적이었다.

당시 미국 기업 대부분은 강성 노조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노조들은 급여뿐 아니라 노동시간, 연금, 보험 등을 좌지우지했다. 이런 기업들에 켈리의 제안은 새로운 돌파구였다. 물론 전업주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켈리걸스(Kelly Girls)’는 1950년대 미국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여성만이 아니라 핀머니(원하는 것을 구매할 수 있는 소액의 자금)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이런 일자리에 동참했다. 1957년 700만달러이던 이 회사 매출은 1964년에 2400만달러로 늘어났다. 인재파견이나 아웃소싱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미국에서 강성 노조가 쇠락하고 다양한 형태의 고용이 자리잡은 배경에는 이런 인재파견업의 역할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있다.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형태의 임시직이 급증하고 있다. 택시는 물론 주차대행이나 쇼핑도우미 가사도우미 안마사 요리사까지도 모바일로 호출할 수 있다. 이들에 의해 경제가 주도되는 것을 ‘긱(Gig) 경제’라고도 얘기한다. 긱이란 용어는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 주변에서 연주자를 섭외해 짧은 시간에 공연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하룻밤 계약으로 연주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미국 대선에서도 긱 경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지난달 30일 “긱 경제로 인해 더욱 유연한 고용이 보장되면서 미국인들이 부가 소득을 올릴 수 있게 됐다”며 “이런 서비스직의 고용 안정을 위한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화당에서도 긱 경제가 기업의 비용을 줄이고 일자리를 늘린다며 긍정적인 입장이다.

이런 인력들을 잡기 위해 월급을 현금으로 바로 지급하는 일이 늘고 있다는 보도다. 차량공유서비스업체인 리프트에 고용된 운전자들은 급여를 그날그날 현금으로 지급받는다고 한다. 우버도 직불카드로 수시로 급여를 인출할 수 있도록 했다. 일부 직종에선 오히려 정규직보다 높은 급여를 받는다. 우버 기사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다고 한다. 자발적 비정규직들이 계속 늘고 있다. 미국 경제의 새로운 변화다. 물론 고용유연성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노동개혁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로선 먼나라 얘기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