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獨본사-한국법인 이메일 확인…편법 배출가스량 조절 암시
박동훈 前사장 8일 피의자 신분 재소환…타머 현 대표도 곧 부를듯


'유로5' 디젤 차량의 배출가스 조작 파문을 일으킨 폴크스바겐 독일 본사가 2011년께 관련 이슈가 있음을 일부 시인한 단서를 검찰이 확보했다.

유로5 차량의 배출가스 조작 문제는 작년 9월 미국에서 처음 불거져 세계적으로 논란이 확산했는데 이미 5년 전 한국에서 선도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할 기회가 있었던 셈이다.

6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최기식 부장검사)는 2010∼2011년께 폴크스바겐 독일 본사와 한국법인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AVK) 사이에 오간 이메일 등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정황을 포착했다.

폴크스바겐은 EA 189 디젤엔진을 장착한 유로5 차량을 2007년 12월 국내에 들여와 판매했다.

배출가스 재순환장치(EGR) 소프트웨어 2개를 탑재해 인증시험 모드에서는 유해물질인 질소산화물을 덜 배출하고 실주행 모드에서는 다량 배출하는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된 차량이다.

한국에선 12만대, 세계적으로 1천만대 이상 팔렸다.

환경부는 2010년 말 국산 디젤 차량이 에어컨 가동 등 특정 환경에서 질소산화물을 과다 배출하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에 점검 대상을 폴크스바겐을 포함한 수입 차량으로 확대했고 똑같은 문제점을 확인했다.

환경부는 이듬해 제조사에 원인 규명과 함께 개선방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대다수 제조사는 환경부 요구를 성실히 이행했으나 유독 폴크스바겐은 자료 제출을 차일피일 미루며 버텼다.

환경부는 폴크스바겐측의 자료 제출 거부로 끝내 원인 규명을 하지 못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당시 폴크스바겐 한국법인이 독일 본사에 환경부 조사 결과와 관련한 사항을 문의하고 본사가 이를 설명하는 내용이 담긴 이메일 등 관련 자료를 다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AVK 총괄대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트레버 힐(54)씨였고 AVK 산하 폴크스바겐 판매부문 사장이 박동훈(64)씨였다.

독일 본사가 보낸 이메일 중에는 EGR 소프트웨어로 유해가스 배출량을 조절했음을 암시하는 내용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폴크스바겐측이 이미 환경부 조사 이전에 유로5 차량의 실정법 위반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최근 "EA 189 장착 차량은 환경부로부터 합법적으로 인증받아 판매됐다"고 밝힌 부분도 한국 소비자에 배상을 하지 않으려는 거짓 해명일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전날 의혹의 핵심 인물인 박 전 사장을 불러 유로5 차량의 배출가스 조작 사실을 인지했는지 집중 추궁했다.

박 전 사장은 혐의를 대체로 부인했지만 검찰은 그가 독일 본사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조작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불법 사실을 알고도 판매를 강행했다면 대기환경보전법 위반에 더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와 사기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검찰은 박 전 사장의 신분을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전환하고 8일 오전 10시 그를 다시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

박 전 사장은 미인증 차량 수입, 연비·소음 시험성적서 조작 등에 관여한 혐의도 있다.

검찰은 두번째 조사까지 마무리한 뒤 그의 신병 처리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은 올 1월 환경부 고발로 배출가스 조작 수사에 착수한 이래 불법행위의 고의성 규명에 초점을 맞춰 각종 증거자료를 수집해왔다.

하지만 4∼5년의 세월이 흐른 데다 회사측의 비협조로 혐의 확인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사장 재임 당시 상급자로 이 사건의 키를 쥔 트레버 힐 전 대표는 2012년 12월 임기를 마치고 한국을 떠나 대면조사가 어려운 상태다.

현재로선 독일 본사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검찰 안팎의 시각이다.

전·현직 고위 인사 중 처벌 대상도 박 전 사장과 독일 출신의 요하네스 타머(61) 현 AVK 총괄 대표 등 2명으로 압축돼 있다.

검찰은 조만간 타머 대표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힐 전 대표에 이어 AVK 대표직에 오른 그는 재임 기간 발생한 연비·소음 시험성적서 조작 등 여러 불법 행위를 지시하거나 묵인·방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이보배 기자 lu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