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사우디 새 경제협력의 신호탄
지난달 황교안 국무총리를 수행해 사우디아라비아를 다녀오면서 중동 지역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이란 핵협상 타결, 시리아 내전, 이슬람국가(IS) 발호 등 중동 지역 내 국제관계 역학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느꼈다. 전 세계적으로 저유가가 뉴노멀이 된 경제 환경에서 중동 국가들이 ‘포스트 오일’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산업다변화 정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사우디는 한국 원유 도입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제1의 원유 공급국이자 해외 건설 수주 누계액의 20%를 점하는 제1의 해외 건설 수주국이다. 역대 정부는 한·사우디 관계에 큰 비중을 부여해 왔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 4월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중장기적으로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신산업 투자를 강화해 경제 체질을 완전히 바꾸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사우디가 비슷한 경제 개혁안을 발표한 적이 있고, 황금알을 낳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를 공개한다는 데 대해 다소 신중한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개혁 노력은 석유라는 유한한 자원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에서 벗어나겠다는 사우디 국가 차원의 결단이라 할 것이다.

황 총리의 사우디 방문 때 사우디 국왕과 정부인사, 경제인과의 만남에서 공통된 화두는 비전 2030이었다. 사우디 인사들은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 공유 및 첨단 기술 도입 등을 통해 한국의 경제시스템을 벤치마킹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비전 2030을 이행하는 데 한국을 핵심 협력 동반자로 삼고자 하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1970년대 이후 한·사우디 경제협력의 시발점을 건설과 원유라고 한다면 비전 2030을 통한 공조는 양국 경제협력의 제2의 부흥기가 될 수 있다. 협력 대상 분야로는 신재생에너지, 보건·의료, 신도시, 투자 분야가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또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숙원 사항이었던 ‘복수사증협정’의 조속한 체결에 합의한 것도 큰 성과로 꼽힌다. 양국 외교부 간에 체결한 ‘정무협의 양해각서(MOU)’도 국제 무대에서 상호 이해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정부는 대(對)중동 정책을 면밀히 입안해 우리 기업의 현지 진출을 뒷받침하고 재외국민 보호에 주력하며 국제 사회의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서 중동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자 한다.

임성남 < 외교부 제1차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