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배지
‘배지’ 하면 국회의원의 ‘금배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지름 1.6㎝에 무게 6g짜리 금속 덩어리. 99%의 은에 금을 얇게 입혔으니 실제로는 ‘은배지’다. 예전엔 순금이었으나 11대부터 바뀌었다. 돈으로 따지면 3만5000원밖에 안 한다.

이 배지를 다는 순간 부수적으로 생기는 특권은 200가지가 넘는다. 가장 센 것은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이다. 원래는 군사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국회의원을 함부로 구금하자 자유로운 입법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헌법에 조항을 둔 것이다. 현행범이 아니면 회기 중에 국회 동의 없이 체포나 구금되지 않는다. 비리에 연루돼도 검찰이나 경찰의 소환에 불응하고 국회 뒤에 숨을 수 있다. 그래서 ‘방탄국회’라는 말까지 생겼다.

돈도 마음껏 쓴다. 국회의원 세비만 연 1억4000만원에 이른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조사 결과 국민소득 대비 국회의원 세비는 OECD 국가 중 일본, 이탈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그에 비한 효과는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 사무실 유지비와 기름값 등 지원경비 9000만원도 별도로 받는다. 보좌진 보수까지 합치면 연간 7억원에 육박한다.

금배지는 국회의원 300명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광역의원 789명, 기초의원 2898명까지 합치면 3987명이나 된다. 광역이나 기초의원들의 특권의식도 국회의원 못지않다. 시의원 배지는 국회의원보다 지름이 0.2㎝ 긴 1.8㎝다. 최근 일부 기초의회는 군의원 배지를 45만원짜리 순금으로 제작해 논란을 불렀다. 중앙 정치무대보다 더한 특권의식이다.

이러니 ‘배지 공화국’에 ‘배지 갑질’이란 소리가 나온다. ‘의원 나리’뿐만이 아니다. 전관예우 파동으로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법조계도 마찬가지다. ‘변호사 배지’를 단 사람만 2만명이 넘는다. 4800여명에 이르는 판·검사까지 합하면 ‘배지’가 3만명에 육박한다. 물론 이들을 모두 비난할 수는 없다.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사심에 가득찬 입법을 남발하는 의원이나, 브로커 해결사로 전락한 검사가 수두룩하다. 조직폭력배를 소탕하다 그 수하로 들어가 ‘주먹 변론’을 맡는 촌극까지 일삼는다.

그렇지 않아도 배지를 없애자는 여론이 많았다. 마침 국회 윤리특별위원장이 국회의원 배지를 떼자고 공개제안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재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말잔치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배지라는 형식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특권 내려놓기와 ‘입법 갑질’ 방지대책도 함께 내놓기 바란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