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장기불황이 정치 지형을 바꾸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8년째 지구촌 전반에 불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처럼 불황 장기화는 정치 지형에도 커다란 지각변동을 초래하고 있다. 희망을 잃은 젊은 세대와 소외계층을 중심으로 커가는 분노는 지구촌 곳곳에서 ‘트럼프 현상’ 같은 이상 현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민주주의 선거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가뭄이 계속돼 민심이 흉흉해지면 옛체제(앙시앙레짐)를 무너뜨리려는 시민혁명이 발발하곤 했다. 프랑스혁명과 같이 성공한 혁명도 있었고 동학혁명과 같이 실패한 민중운동도 있었다. 유능한 지도자들은 민심이 더 나빠지기 전에 선제 대응으로 위기를 벗어나곤 했다. 세종대왕은 집권 초기 가뭄으로 민심이 악화되자 기우제를 지내고 금주령을 내리는 소극적 민심대책에 병행해 측우기 발명, 수리시설 확충과 같은 적극적 대책을 추진해 위기를 극복했다. 반면 프랑스혁명으로 처형당한 루이 16세는 민심을 선제적으로 다스리지 못한 대표적 사례다.

근래 한국 정치사를 보더라도 정권교체는 대부분 경제요인에 의해 이뤄졌다. 박정희 대통령부터 이어온 보수정권의 장기집권이 1997년 외환위기로 진보정권으로 교체됐고 노무현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으로의 교체도 경제문제가 좌우했다. 이번 새누리당 총선 참패도 공천파동이 촉매 역할을 했지만 장기불황에 따른 민심이반이 근저에 깔려 있었다. 최근 한국을 비롯 프랑스·벨기에 등이 추진하는 노동공공개혁이 강한 저항에 부딪힌 것도 따지고 보면 장기불황에 따른 대중의 분노에 기인한다.

지금 세계적으로 겪는 불황은 저출산고령화나 경제 양극화와 같은 구조적 요인에 기인하고 있어 단기간에 해결이 어렵다. 특히 한국은 5년 단임 대통령제 권력구조를 갖고 있어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근본대응을 어렵게 한다. 일본도 장기불황기인 ‘잃어버린 20년’ 동안 빈번한 정권교체가 있었고 이로 인해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정책대응이 어려웠다.

장기불황 시대에는 국민의 분노와 좌절을 적절히 카타르시스시키는 통치기술이 필수적이다.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권력자나 정치 지도자가 민심을 다스리기 쉬웠다. 그러나 최근 ‘옥시파동’이나 ‘강남역 묻지마 살인’ 추모 열기에서 보듯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한 분노나 공감의 전파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져 과거와 같은 통치나 소통 방식으로는 대응이 어렵다. 세계적으로 모바일 정당과 모바일 민주주의에 관심이 증대되고 이를 활용한 신생정당이 젊은 층의 지지를 받는 이유다. 장기불황에 지친 유권자들은 경제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면서 정권교체에만 몰두하는 양당정치의 폐단에 실망해서 스타트업 정당이나 정당 내 아웃사이더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분노의 시대에 국가나 사회가 잘 대응하지 못하면 극단적인 성향을 띤 트럼프식 막말정치가 성행하고 인기영합식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근본문제 해결은 더 요원해지고 계층 간, 세대 간, 지역 간 대립과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 정치 지도자나 정당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분노의 시대에는 국민과 고통을 함께하고 소통을 통해 공감과 협력을 이끌어 내는 정당이나 정치 지도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선거 때마다 국민은 놀라울 만큼 균형감각을 갖고 겸손한 편과 약자 편에서 강자의 오만을 심판해 왔다. 국민이 바라는 좋은 정치란 권력을 나누고 타협하는 상생의 정치다. 이번 20대 국회에 국민이 바라는 것도 타협과 상생의 정치를 통해 위기에 빠진 경제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참에 승자독식을 불러오고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 소선거구제나 5년 단임 대통령제에 대한 개선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권혁세 <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금융감독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