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 준수를 하지 못했으니 물량을 줄이겠다', '좋다, 그렇다면 다른 부품의 물량 보전을 해줘라'. 하지만 이후 물량 보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견디다 못해 협력업체가 납품을 중단하자 현대기아차 공장 가동이 하루 멈춰 섰다. 지난 4월에 벌어진 대진유니텍 사태의 본질이다. 당시 급하게 불은 꺼졌지만 이후 협력사에는 또 다른 갈등이 빚어졌다. 납품 중단에 따른 피해보상금이 청구돼 결국 협력업체가 부도를 맞게 됐다.

그간 대진유니텍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사안은 올해 초로 거슬러 오른다. 대진유니텍은 공조부품을 만드는 곳으로, 주요 납품처는 한온시스템(구 한라공조)과 대유위니아(구 만도위니아), 현대기아자동차 등이다.
[칼럼]골리앗 현대기아를 겨냥한 부품 개미의 반항

발단은 현대기아차의 1차 협력사인 한온시스템이 대진유니텍에 금형 품질의 문제를 제기하며 시작됐다. 일정 품질을 요구하며 납품물량 축소를 했던 것. 대진유니텍은 금형의 물량 축소를 받아들이는 대신 다른 부품의 물량 증대를 요청했다. 하지만 물량 축소만 됐을 뿐 보전은 되지 않았다. 그러자 대진유니텍은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가 났고, 마지막 협상의 카드로 납품 중단을 선택했다.

당연히 대진유니텍의 납품중단은 먹이사슬처럼 연결된 완성차 생산에 영향을 미쳤다. 한온시스템이 대진유니텍에서 부품공급을 받지 못하자 모비스로 넘겨야 할 공조모듈 생산이 중단됐고, 모비스는 현대기아차로 차체 모듈을 건네지 못했다. 결국 현대기아차 생산 라인이 하루 멈춰 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의 먹이사슬이 시작됐다. 당연히 완성차업체는 납품 중단 해결을 요구했고, 모비스 또한 한온시스템의 납품 정상화를 기대했다. 결국 한온시스템은 해결 방안으로 대진유니텍을 1,300억원에 긴급 인수키로 결정, 사태가 마무리됐다. 당장 모비스에 납품을 재개해야 했던 한온으로선 일단 공장부터 돌려야 하는 상황이었고, 인수 대금 가운데 1,200억원을 우선 대진유니텍 대표에게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부품 공급은 정상화됐다.

하지만 여기서 갈등이 봉합된 것은 아니다. 한온시스템은 모비스로부터 피해금 보상 청구를 받았다. 모비스가 생산하지 못한 기간의 손해금을 물어야 했던 것. 하지만 한온으로선 납품을 중단한 대진유니텍이 져야 할 책임으로 판단, 과거 대진유니텍 대표였던 A 사장에게 보상금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반면 A 사장은 오히려 아직 지급되지 않은 인수 잔금 100억원을 한온시스템에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이미 인수대금이 지급된 통장의 가압류였다. 그리고 가압류는 대진유니텍의 또 다른 협력사의 발목을 잡았다.

한온시스템은 가압류 결정 배경으로 인수 자체의 강압성을 들고 있다. 한온시스템은 공식 입장을 통해 당시 대진유니텍 사장이 생산라인을 인수하지 않으면 납품을 중단하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다시 납품이 이뤄지지 않으면 협력사나 완성차까지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어 불가피하게 인수를 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인수금액도 회계실사 등을 거치지 않고 대진유니텍 대표가 일방적으로 책정한 금액이고, 대진유니텍이 납품을 중단하면 큰 곤란에 빠질 것을 이용해 협박하는 등 부당 이득까지 편취한 행위여서 검찰에 고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수 대금이 지급된 통장에 가압류를 걸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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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불이 옮겨 붙은 곳은 대진유니텍의 협력사다. 대진유니텍 전 대표의 통장에 가압류가 걸리면서 협력사들이 전 대표로부터 납품대금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협력사들은 한온시스템을 방문, 일단 가압류 해제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대진유니텍 협력업체 관계자는 "대금 미지급은 단순히 자동차사업부 뿐 아니라 김치냉장고를 생산하는 라인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부도 이후 현대기아차 완성차 공장은 물론 가전 공장도 멈출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협력사들은 "한온은 대진유니텍의 전 대표에게 받으라 하고, 대진유니텍 전 대표는 한온이 통장 가압류를 걸어 지급조차 못한다고 버티는 상황이 벌어져 답답할 뿐"이라고 호소한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완성차 생산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한온시스템은 대진유니텍 인수 이후 납품에 대해선 결제를 해주고 있어서다. 하지만 인수 이전 납품 대금은 과거 대표의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진유니텍의 협력사들은 받아야 할 대금을 받을 방법이 막혀버린 셈이다.

그러자 흔히 '개미'로 표현되는 중소 부품 협력사들이 최후의 방법을 찾고 있다. 이들은 아직 한온시스템이 과거 대진유니텍 대표에게 지급하지 않은 100억원을 주목한다. 100억원은 일종의 인수 잔금으로 대진유니텍의 모든 법적 소유권이 한온시스템으로 넘어가면 지급키로 돼 있는 돈이다. 대진유니텍 전 대표는 이미 법적으로 모든 소유권을 넘긴 만큼 100억원의 권리를 주장하고, 협력사와 논의 끝에 권리를 협력사로 건네기로 했다. 그리고 협력사는 넘겨받은 채권을 토대로 현대차에 직접 청구한다는 방침이다. 실제 대진유니텍이 현대차에 직접 납품한 것도 있는 만큼 현대기아차를 상대로 대금 지급 해결을 받겠다는 의지다.

흔히 완성차 대기업이 잔기침을 하면 1~2차 협력사는 감기를 앓고, 3~4차는 몸살로 누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아가 5~6차 협력사는 입원을 해야 하고, 7~8차 협력사는 사람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협력사 간 갈등은 언제나 완성차로 향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번 사안에 대해 부품업계는 대기업의 무리한(?) 요구가 중소 부품업체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입을 모은다.

얼마 전 일본 토요타 본사를 방문했다. 그 곳에서 '사상부터 제조철학을 협력사와 공유한다'는 말을 들었다. 다시 말해 7~8차 협력사부터 완성차회사와 제조 및 품질철학을 논의하며 원가절감 방안까지 함께 고민한다는 의미다. 그냥 1~2차에 문제를 맡기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결국 완성차의 품질이 하락하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언급도 나왔다. 그래서인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부품 개미들의 외침이니 말이다. .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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