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조선업 개편 언급도 못한 정부
정부는 지난 8일 ‘산업·기업 구조조정 추진 현황 및 향후 계획’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조선산업 관련 내용은 모두 8쪽. 이 중 정부 대책은 한 장의 종이에 모두 담겼다. 나머지는 각 조선회사가 세운 자구계획 소개로 채워졌다. 현대중공업은 금융계열사를 매각하고 일부 사업부를 분사하기로 했다. 삼성중공업은 유상증자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인력 감축은 공통적으로 포함됐다. 조선사 관계자들은 “살기 위해 팔다리를 자르는 심정으로 자구계획을 마련했다”고 했다.

한 장의 종이에 담긴 정부의 결론은 “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주관하고 있는 업계 공동 컨설팅 결과에 따라 선제적·자율적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였다. 정부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방향으로 조선산업을 개편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조선산업을 어떻게 개편할지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상 기업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을 제외한 나머지 채권단 산하 조선사들을 어떻게 정리할지에 대한 결론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연 뒤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과잉공급과 과당경쟁 상태인 조선산업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 자구노력을 전제로 경영정상화를 모색하되, 정상화 추진이 곤란하면 인수합병(M&A)이나 청산 등 사업 정리를 해야 한다. 대형사와 중견사 모두 경쟁력이 없는 부문을 축소하는 다운사이징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결론을 내린 뒤 조선산업 상황은 더 악화됐다. 올 들어 ‘수주절벽’이 시작되면서다. 올 1~5월 한국 조선사들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5% 수준밖에 수주하지 못했다. 지난해 말부터 우려한 공급과잉 현상이 더욱 심각해졌으면 정부 대책도 수위가 높아져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각 회사가 자구계획을 실천해 위기를 극복한다”는 결론만 내렸다. 오히려 지난해 말 스스로 거론했던 M&A, 청산, 경쟁력 없는 분야 축소 등의 방안은 슬며시 사라졌다. “다 살리려다 다 죽인다”는 업계의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도병욱 산업부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