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통제조업, 아프리카서 돌파구 찾아라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라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를 떠올린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이들보다 더 유명한 한국 기업이 있다. 케냐,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에서만 9곳에 공장을 두고 1만여명의 현지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아프리카 최대 가발회사 ‘사나(SANA)’다. 150여종의 가발을 생산하는 사나는 아프리카에서 판매되는 가발의 40%를 차지한다. 지난 28년간 낯선 땅에서의 끝없는 도전과 현지화 전략으로 일궈낸 성과다. 더욱이 반도체, 자동차 등 정보기술(IT)산업이나 중화학공업 제품이 아니라 순수 경공업 제품으로 성공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물론, 아프리카에서 사나와 같은 성공 스토리는 드문 사례다. 아프리카는 한국 중소기업이 진출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비행기로 10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와 6시간 이상의 시차는 물론 불안한 치안과 부족한 인프라는 기업 경영에 큰 위험요인으로 작용한다. 수출로 아프리카 시장진출을 꾀할 경우 과도한 수송비용과 복잡한 통관절차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렇다고 현지 공장을 짓자니 노하우가 부족해 노무관리가 쉽지 않고, 브랜드파워가 약한 중소기업이 단독으로 판로를 개척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아프리칸 리스크(African Risk)로 머뭇거리기엔 우리가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 침체된 내수시장은 여전히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던 수출도 중국 등 주력시장의 수요감소와 대외경쟁력 약화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때 우리 제조업 성장의 불을 지폈던 섬유, 의류, 신발 등 경공업 분야 전통제조업은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 경제가 성숙기로 접어들면서 노동집약적 산업부문에서 경쟁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랜 노하우와 생산 기계·설비 등을 보유한 경공업 분야 제조 기업들의 쇠퇴를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섬유, 의류, 신발 등 전통제조업을 살릴 대안으로 아직은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인 글로벌 신흥시장인 아프리카가 있다. 사나의 성공 사례에서 보듯 1970년대 한국 경제와 비슷한 아프리카에서는 노동집약 제조업의 전망이 밝다. 케냐를 비롯해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산업구조를 기존의 농업위주에서 제조업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고, 제조업은 10%에 불과한 아프리카에서 한국에는 사양산업일 수 있는 전통제조업이 신(新)성장 동력산업인 셈이다. 섬유, 신발 등 소비재를 중심으로 중장비, 농기계, 중소형 플랜트 등으로 아프리카 시장을 개척한다면 제2, 제3의 사나와 같은 성공기업이 등장할 것이다. 또 아프리카 인구가 10억명 이상인 데다 중산층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소비재 구매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가운 소식은 우리는 이미 아프리카에 공적개발원조와 의료봉사 등 인도적 교류협력을 통해 현지인의 신뢰를 쌓아왔으며 K팝, K드라마, 새마을운동 전파 등으로 한류가 상당히 확산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3개국 정상외교와 에티오피아 한국전용 섬유단지조성, 이중과세방지협정 체결 등 다양한 순방경제 성과는 한국 중소기업들의 아프리카 시장 진출에 촉매제가 될 것이다.

남은 것은 우리 기업인들의 아프리카 시장 개척이다.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과 열정의 기업가 정신은 아프리카를 대한민국 경제영토로 만드는 데 충분하다. 지금의 호기를 활용해 수출이나 투자에서 현지화 전략을 구사한다면 아프리카 대륙은 우리 기업들에 노다지 땅으로 다가올 것이다.

박성택 < 중소기업중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