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브렉시트
유럽합중국(Unites States of Europe) 설립을 주장한 윈스턴 처칠이 유럽통합론자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회의론자들은 그가 2차대전 이후 그런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행동은 달랐다고 한다. 정작 처칠의 의도는 유럽 대륙에서 먹혀들지 않았다. 오히려 프랑스의 드골이 통합 작업을 했다. 드골은 1950년 독일과 철강 석탄 공동 관리 계획을 만든 뒤 벨기에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을 끌어들였다. 6개국이 참여하는 유럽철강석탄공동체를 출범시킨 것이다. 1954년 설립된 유럽경제공동체(EEC)는 철강공동체의 후신이다.

이런 공동체는 유럽인들의 마음 깊숙이 존재하는 신성로마제국의 로망에서 출발한다. 천년왕국 신성로마제국은 기독교적 영원성의 상징이었다. 머리가 두 개인 독수리휘장 또한 제국의 영원성과 무관치 않다. 멸망한 지 올해로 210년이나 되지만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희망은 유럽인들의 숨결 속에 깃들어 있다.

영국은 1963년 EEC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했지만 드골이 거절했다. 드골이 싫어하는 미국과 친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드골의 유럽대륙에 대한 편향성도 컸을 것이다. 영국의 EEC 가입은 1969년 드골이 은퇴하고 나서야 성사됐다. 정작 영국에선 EEC 가입에 대한 논란이 정권마다 불거졌다. 대륙 국가들이 주도하는 공동체에 굳이 들어갈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노동당은 줄곧 반대의 깃발을 세웠으며 영국의 EU 탈퇴를 조건으로 하는 독립당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보수당의 대처 총리는 영국의 예산지분이 너무 많다며 환급을 주장하는 등 강력한 실리정책을 취했다. EU가 동유럽으로 회원국을 늘리면서 영국에서 EU 탈퇴론은 더욱 거세졌다. 2004년 선거에선 독립당이 제3당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영국의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가 이달 23일 열린다. 캐머런 총리가 2013년 1월 브렉시트(Brexit)를 언급한 이후 3년6개월 만이다. 여론조사에선 EU 잔류쪽이 약간 높게 나타나지만 부동층이 10% 이상이나 돼 향배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한다. 무역파트너로서 EU에 대한 필요성이 줄고 있고 EU의 금융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굳이 EU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는 여론이 만만찮다. 대륙과의 오래된 앙금도 존재하고 있다. 만일 탈퇴로 결정나면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에도 불똥이 튈 것 같다. 민족주의로 포장된 유럽 대국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물론 일자리 문제가 관건이다. 과연 ‘캐머런의 핵폭탄’은 성공할 수 있을지.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