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중국몽
종종 중국몽(中國夢)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최근 서울을 찾은 중국 공산당 최고위급 간부 한 사람은 “중화민족의 옛 영화를 재현하는 것”이라고 중국몽을 정의하기도 했다. 인쇄된 연설문에서 그런 유치하고도 공세적인 글귀를 봐야 하는 것은 당혹스럽다. 오랜 기간 동안 중국의 주변부였고, 대륙에 거센 정치바람이 불 때마다 피바람을 봐야 했던 한국인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옛 영화’라고? 그럴 리가. 역사적 사실과 다를 뿐더러 곤란한 표현이다. 위대한 과거를 자랑하는 민족치고 오늘날 그것에 걸맞은 국격을 보여주는 국가는 드물다. 과거는 돌아갈 수 없기에 언제나 판타지다.

스프래틀리 군도를 안고 있는 남중국해에서, 센카쿠 열도의 동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이 뒤엉켜 충돌하는 상황이기에 반도의 운명을 놓고 갈등하는 한국인의 심사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엊그제 미국 정부가 미·중 반도체 전쟁에 한국도 동참해줄 것을 요구해 온 것은 경제적 반도국가라는 새로운 지경학적 갈등 구조를 잘 보여준다. 중국은 작년 말 현재 220억달러가 넘는 정부 돈을 반도체 사업에 퍼붓고 있다. 2020년이면 500억달러로 불어난다. 철강도 비슷하다. 보조금에 힘입어 철강 생산은 무자비한 투매 공세를 거듭하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동맹으로 새 출발한 미국과 베트남의 안보전략은 큰 변화다. 로버트 죌릭의 말로는 TPP는 곧 군사동맹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 협정에 아직 서명하지 못하고 있다. 어떻든 미 해군은 40여년 만에 베트남 캄라인항에 다시 기항하게 됐다. 한때 민족주의 열풍에 휩싸여 미국을 배척한 필리핀은 이미 수비크만을 미 해군에 돌려주었다. 중국의 무력 공세에 겁먹은 남중국해 주변 국가들은 미7함대를 다시 불러들인다. 세계 에너지 시장의 판도 변화가 미국의 ‘탈(脫)중동·아시아 회귀’를 만들었지만 중국의 일방성이 초래한 반사적 결과다. 대만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중국은 아직 멀었다는 합창이다.

중국은 철강에서도 일전불사의 파상공세를 펼쳐 왔다. 결국 지난주 미국으로부터 냉연강판 522%라는 징벌적 상계관세를 맞았다. 중국제 철강은 미국과 유럽의 반발을 촉발시켰다. 철강 전쟁은 중국의 ‘시장경제국가지위(MES)’ 획득 가능성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 이미 2005년 중국에 시장경제국 지위를 부여했다. 카드는 그렇게 날아갔다. 중국 문제군은 이렇게 갈수록 확장되고 있다. 한국제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국가 보조금을 배제한 것에서 보듯이 중국은 아직 질투심에 사로잡힌 개도국이다. 부쩍 강화되고 있는 ‘바이 차이나’ 등 외국인 차별은 후진성의 상징이다. 중국에 진출한 독일 등 외국 기업들의 비명 소리는 날로 높아진다.

중국 공산당 간부들이나, 유달리 국가주의 성향인 미국의 트럼프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알고 보면 싼 철강재는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무역의 확대를 지지하고 보호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언제나 정당하다. 미국과 중국 모두가 대국답지 않은 갈등을 만들고 있다. 편협한 애국주의 정책은 글로벌 국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중화라는 이름은 중국이 오랜 기간 동안 개방국가였기 때문에 붙여진 영광스러운 이름이다. 애국주의가 아니라 세계주의였고, 무력이 아니라 문치 국가였기에 아시아 인근 나라들의 존경을 받았다. 5호16국 이래 중국은 언제나 이민족의 점령지였지만 모든 나라들이 결국에는 자기 땅을 들어다 중국에 바친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말았다. 고구려도 그랬다. 오늘날 중국의 광대한 영토는 만주의 청국이 갖다 바친 것이다. 한족의 국가 송(宋)은 상비군조차 두지 않았고, 무역은 언제나 적자였다. 요, 금, 원, 청에 잇달아 나라를 내주면서 중국의 국경은 날로 커져 갔다. 이것이 중화다.

반도체와 철강의 경제적 갈등이거나,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의 무력분쟁이 모두 한국의 운명을 시험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 면에서건 반도적 고뇌에 직면한다. 우리에겐 중국이 개방국가로 나오도록 안내할 책임도 있다. 값싼 중국몽이라니.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