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혁신, 산업생태계 먼저 꿰뚫어봐라!
21세기 기업 경영에서 핵심적인 키워드는 ‘혁신’이다. 기술 개발 노하우가 빠르게 전파되고 경쟁은 치열해졌다. 소비자들은 더 쉽게 싫증을 낸다. 이런 환경에서 혁신하지 않는 기업은 지속적으로 생존하기 어렵다.

혁신의 본질은 창조적 파괴다. 기존의 경영 방식과 전혀 다른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는 의미다. 경영학의 구루와 시대를 앞선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라”, “경쟁자보다 앞서고 탁월한 실행에 집중하라”고 강조했다. 이 두 가지 요구를 완벽하게 달성한다면 혁신에 성공할까. 아쉽지만 그렇지 않다.

소니는 경쟁자들보다 훨씬 앞선 기술력으로 전자책 단말기 ‘e북 리더’를 만들었고 화이자는 당뇨병 환자를 위해 인슐린을 주사 대신 흡입할 수 있는 혁신적 기구를 개발했다. 하지만 모두 시장에서 철저하게 실패했다. 이 제품들은 소비자들이 필요로 했고 경쟁자들보다 앞선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실패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산업 생태계에 연결돼 있는 파트너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 소니의 e북 리더는 인터넷 인프라와 디지털 콘텐츠 부족으로 실패했다. 화이자의 인슐린 흡입기는 의사들의 외면 때문에 환자에게 전달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소위 아이(i) 시리즈를 연속으로 성공시킨 애플은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그러나 PC산업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애플은 철저한 실패를 경험한 기업이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세계 최초로 PC 상용화에 성공했다. 그들이 선보인 운영체제 매킨토시는 애플 PC의 화룡점정이었다. 그러나 혁신적인 기술로 만든 획기적인 제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애플 PC는 시장 점유율 10%를 넘지 못하고 참담하게 실패했다.

애플은 개별 기업 차원에서 혁신적인 PC를 생산했지만 PC산업 생태계 측면에서는 PC 사용에 필요한 응용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 후 IBM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를 탑재하면서 다양한 응용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호환성 높은 PC를 내놓자 너도나도 IBM 모델을 채택했다. 이 때문에 PC 소프트웨어 생태계는 급격히 윈도로 기울었고 애플 PC는 몰락했다. 성공적인 혁신을 위해 뛰어난 고객 통찰과 빠르고 탁월한 실행 역량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것은 성공의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일 뿐이다. 혁신을 성공시키려면 그 혁신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 연결된 생태계 맥락과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가령 전구는 그 자체로 획기적인 발명품이지만 성공하려면 먼저 전력망 구축이 돼 있어야 한다.

1992년 미쉐린은 전체 타이어산업을 바꾸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팩스시스템을 발표했다. 팩스시스템의 핵심은 펑크 난 상태로 성능에 지장받지 않고 주행할 수 있는 런플랫타이어다. 펑크가 나도 비상정차를 하거나 트렁크에서 스페어타이어와 잭을 꺼내 수리할 필요가 없고 길가에서 견인차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계기판에 펑크가 났다는 경고등을 본 뒤 펑크 난 상태에서 시속 90㎞로 200여㎞를 더 달려 정비소에 가 타이어를 수리할 수 있는 획기적인 타이어다. 시장조사 결과 소비자는 런플랫타이어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럼에도 팩스시스템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타이어를 수리할 서비스센터를 찾기 어렵다는 소비자 불만 때문이었다. 미쉐린이 충분한 보수나 교체 설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러 건의 집단 소송이 제기됐고 결국 미쉐린은 2007년 팩스의 추가 개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15년간 야심 차게 준비한 미쉐린의 혁신적인 타이어는 제품 하자 때문이 아니라 충분한 서비스센터를 확보하지 못해 실패했다.

성공적인 혁신을 위해서는 혁신을 개별 기업의 역량과 노력에만 국한시키는 좁은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한 혁신의 성공은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경쟁사보다 빠르고 탁월한 역량으로 실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 참가자와 이들의 연결고리를 파악하는 통찰력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이혜숙 < IGM (세계경영연구원 )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