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첨단두뇌' 징집하겠다는 국방부
1980년대 중반 국내 명문대 사회계열에 입학한 한 친구는 ‘얼리어답터’였다. PC 열풍이 불던 당시 그는 친구들의 컴퓨터를 조립해 주고 바이러스에 걸리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당시 개발한 ‘V2’를 이용해 고쳐주곤 했다. XT, AT, 386, 펜티엄 등 업그레이드되는 PC 기종을 줄줄이 꿸 정도였다.

하지만 석사학위를 마치고 현역 사병으로 군대에 다녀온 뒤 그는 더 이상 얼리어답터가 아니었다. PC통신, 인터넷, 모바일,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급속도로 발전하는 정보통신기술(ICT)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졌다. 사회와 단절된 2년여의 군 생활이 커다란 공백이었다는 게 그 친구 주장이다.

이공계 병역특례 73년부터 시행

물론 그는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신성한 병역 의무를 이행했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의 이공계 친구들은 대부분 병역특례를 받았다. 인문사회계에서도 상당수가 방위(현재의 사회복무요원)로 빠졌지만 그는 1등급 판정을 받고 군에 갔다. 하지만 그 역시 병역특례를 받았다면 병사 역할보다는 국가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고 했다.

지금은 군에서 학점도 따고 자격증 취득 등 자기계발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군 생활은 여전히 부담이다. 사회와의 단절이 불가피해서다. 이 같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는 1973년부터 이공계 우수 인재들에게 연구개발(R&D) 현장을 지킬 수 있도록 병역특례를 부여해 왔다. 다른 분야와 달리 R&D는 연구의 연속성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국방부는 2023년까지 현역자원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병역특례를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빚고 있다. 저(低)출산에 따른 ‘인구절벽’으로 병역자원이 부족하다는 게 국방부 논리다. 북한의 위협 등으로부터 국가를 수호할 적정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역자원 확보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의경·의무소방관과는 달리 봐야

하지만 이공계생들의 병역특례가 없어지면 대학원 진학이 크게 줄어 국내 과학기술 연구기반이 무너지고,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의 연구인력 확보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과학기술계는 반발하고 있다. KAIST에서만 병역특례를 받는 학생들이 매년 1400여건의 위성, 로봇, 국방, 항공 등 국가 R&D 과제와 400여건의 산업체 위탁 R&D 과제를 수행 중이다. 이들이 도중에 군에 입대하면 수천억원대 국민 혈세가 투입된 연구들이 중단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방부는 이공계 병역특례뿐 아니라 의무경찰 의무해경 의무소방관 등 대체복무도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대체복무요원을 정규 경찰이나 소방관 등으로 채운다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어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연간 1만5000명 정도를 선발하는 의무경찰을 없애면 1만명 정도의 정규 경찰인력을 새로 뽑아야 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하지만 진정 경제를 생각한다면 그동안 눈부신 경제성장을 뒷받침해 온 과학기술 인재들이 더 나은 방법으로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박탈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등 첨단무기 개발로 위협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첨단두뇌 징집’으로 대응해서야 되겠는가.

정태웅 정치부 차장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