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이 엔저 정책을 놓고 또 충돌했다. 일본은 엔저를 위한 시장 개입을 인정해주기 바라지만 미국은 용인할 수 없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의견 차이는 지난 20~21일 일본에서 열린 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도 확인됐다. 아소 다로 일본 재무상은 “최근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이 이틀 새 5엔이나 움직인 것은 질서 있는 움직임이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은 “무질서에 대한 기준은 높다”며 “통화절하 경쟁을 자제한다는 이번 회의의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일축했다. 양국 재무장관 회담까지 따로 열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일본으로선 당혹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6월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이 커지면서 강달러가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는 미국의 경고는 전혀 변화가 없다. 일본은 지난 2월과 4월 G20 회의에 이어 이번 G7 회의에서도 좌절하고 말았다. 아베노믹스의 성과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6월 추가 양적 완화 등을 통한 엔저를 추진하려던 계획을 실행하기가 쉽지 않게 됐다.

엔저 정책에 대한 미 정부 견제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는 게 미 언론들의 분석이다. 그동안 엔저를 용인하던 미국이 엔저 불가로 선회한 데 대해 이런저런 관측이 제기된다. 우선 중국의 불투명한 환율 정책을 늘 비판하는 미국이 인위적 엔저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오바마 정부가 미국 내 FTA 비판론 속에서 TPP가 자칫 좌초할지 모를 지경에 처하자 미 의회와 제조업체들을 달래기 위해 꺼내든 카드라는 말도 들린다.

미·일 간 환율 정책 충돌이 두 나라만의 일일 수는 없다. 일각에선 1985년 플라자합의 같은 환율 정책의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으나 이를 일축하고 있는 미국이다. 미 재무부는 최근 일본과 독일을 중국 대만 한국 등과 함께 ‘환율정책 관찰대상국’으로까지 지정하면서 인위적인 통화 약세는 무역 보복을 받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경고하는 정도다. 글로벌 환율전쟁 조짐까지 보인다. 감당 못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한국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