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어느 히든챔피언의 좌절
요즘 인천 남동공단이 뒤숭숭하다. 이 지역 ‘간판 기업’인 세일전자 때문이다. 스마트폰 부품인 연성회로기판(FPCB)을 제조하는 이 회사는 이달 초 자금난을 버티지 못하고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히든챔피언’으로 불리던 강소기업이어서 업계가 받은 충격은 컸다.

세일전자는 삼성전자에 스마트폰 부품을 납품하면서 2008년 423억원이던 매출이 2013년 1819억원으로 네 배 넘게 초고속 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매출과 고용이 급성장하는 고(高)성장형 중소기업”이라며 두 차례나 찾았던 기업이다.

세일전자에 비상등이 켜진 것은 2014년이었다. 밀려드는 주문량을 소화하려고 생산설비를 두 배로 늘린 것이 화근이 됐다. 증설이 마무리됐을 땐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이 중국의 추격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수주가 급감했다. 세일전자뿐만이 아니었다. 대다수 국내 전자부품업체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엔저(低)를 등에 업은 일본은 물론 중국 부품업체들에 가격경쟁력에서 밀린 탓이었다.

줄줄이 무너지는 전자부품 중소기업

인터플렉스 멜파스 플렉스컴 에스맥 등 ‘스마트폰 호황’을 타고 잘나가던 전자부품업체 상당수는 수년째 매출 격감과 적자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이렇다 보니 한국 전자부품산업의 씨가 마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부품회사들은 중국 자본에 이미 넘어갔다.

전자부품업체들의 부진은 수출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분기 무선통신기기 부품 수출액은 37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 줄었다. 14분기 만의 감소다. 한국 전자산업의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부품산업은 완제품의 경쟁력과 부가가치 창출의 핵심 원천으로 꼽힌다. 전자부품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자동차 조선 기계 의료기기 등 산업 전반에 전자부품이 쓰이고 있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불황 속에서도 국가경쟁력을 잃지 않은 것은 20~30%의 영업이익률을 낼 정도로 탄탄한 무라타 교세라 같은 전자부품 기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봇 등 첨단 산업에서 일본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도 전자부품 경쟁력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위기 해법의 핵심은 기술력

국내 대표 전자부품업계가 위기에 내몰린 현실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낙담할 일만은 아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다시 일어선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스마트폰 부품업체 크루셜텍이 그렇다. 캐나다 블랙베리에 모바일 광마우스를 독점 공급하며 급성장했다가 애플 아이폰이 나오면서 난관에 봉착했던 이 회사는 세계 최고 수준의 광 인식기술을 스마트폰 지문인식에 접목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차별화할 수 있는 핵심 기술만 있으면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세일전자도 마찬가지다. 자금난으로 법정관리에 내몰렸지만 완전히 쓰러진 것은 아니다. 이 회사의 안재화 대표는 300여개 협력사를 설득해 가며 재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자동차·의료기기부품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화웨이 등 중국 스마트폰업체로 판로를 확대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세일전자도 크루셜텍처럼 다시 일어서 국내 전자부품산업이 한 단계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박영태 중소기업부 차장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