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사 '콕 찌르기'] 과학논문 94%가 영어로 쓰여진다…영어 모르면 정보 습득비용 더든다
영어 때문에 고민하는 청소년이 많다. 사실은 영어 때문에 고민하고 절망하는 어른은 더 많다.영어가 인생에서 그만큼 중요한가? 중요하다. 영어는 미국과 영국의 언어가 아니다. 세계어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은 세계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는다. 나라 사이를 오고 가는 정보, 사람, 물자의 양이 이전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증가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터다. 예를 들자면, 불가리아 사람과 스리랑카 사람이 한국에서 만났을 때 의사소통 수단은 영어일 확률이 가장 높다는 얘기다. 그것이 안부 인사든, 수출입 상담이든, 학술토론이든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과학논문의 경우 세계 주요 학술지를 기준으로 94% 정도가 영어 논문이다. 가장 효율적으로 독자를 확보할 수 있고 전문가들의 반응을 기대할 수 있으며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로 안쓰면 인정 못받아

다른 분야의 논문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성과를 인정받으려면 영어로 발표해야 한다. 그렇다. 영어는 21세기 지구에서 첨단정보를 기록 전파 저장하는 수단이다. 영어를 못하면 ‘정보’에 뒤처진다. 학술분야뿐 아니라 무역, 문화, 기타 여러 가지 분야에서도 상황은 같다.

영어의 세계화가 대세를 이루다 보니, 20여년 전만 해도 21세기 후반엔 마이너 언어가 지구상에서 사라지거나 ‘박물관언어’가 되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박물관언어란 실생활에서는 이미 사라졌지만 특수 목적을 위해 극소수 전문가만이 배우고 익히는 언어를 말한다. ‘성경’의 초기 기록을 담당한 헬라어, 고대 인도의 문화적 정수를 기록한 산스크리트어(‘샴푸’가 ‘(부드러운) 마사지’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다), 고대 로마의 대중언어였던 라틴어가 일종의 박물관언어다. 이들 말고도 전문가들은 보다 소수 사람이 사용했던 말들을 배우고 익힌다. 한국어도 한반도 이외 지역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는 점, 언중(言衆)이 7000만명 남짓에 불과하다는 점 때문에 박물관언어가 될 확률이 높았던 언어다.

7000만명만 쓰는 한글의 미래

하지만 기술의 발달이 역설적으로 한국어의 생존 확률을 높이고 있다. 통번역기술의 발전 속도가 마이너언어들의 쇠락 속도를 따라잡는 중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30년은 한국어를 포함한 마이너언어가 박물관언어로 소멸해 가느냐 아니면 동시 통번역기술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을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역사적인 분기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의견을 모은다. 이 말은 적어도 30년 동안은 영어의 중요성이 감소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 이후에라도 ‘영어 배우기’는 지구인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리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비용과 효율을 생각하면 영어 이외 언어가 세계어의 지위를 대체할 가능성도 전무하다.

영어를 배우는 궁극적 목적은 전문적인 문서를 읽고 쓰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은 너무 멀다. 까마득히 높고 아득한 곳을 바라보다 포기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영어 배우기를 포기하고 외면할 수는 없으니 일단 등반 경로와 방법을 바꿔보자. 정상 정복이 아니라 베이스캠프에 도달하는 것을 1차적인 목표로 삼는 것이다. 베이스캠프는 정상에 오르기 위한 준비 센터다. 일단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점으로부터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다.

‘영어 배우기’에서 ‘베이스캠프’란 과연 무엇을 말할까? 영어회화를 잘하는 것이다. 외국인을 만나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해외여행을 떠나 기죽지 않고 세계 곳곳을 힘차게 다니는 능력이다. 영어를 배우는 데는 지름길이 없지만, 영어회화를 잘하는 효율적인 요령은 있다. 특정한 표현을 끝없이 응용하고 쉬운 단어를 영어답게 조합해 활용하는 것이다. 회화를 능숙하게 잘하는 데는 800개 단어로 충분하다. 문제는 이들 쉬운 단어를 얼마나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손발이 묶였다’를 영어로?

예컨대 외국인이 한국어로 말한다고 가정해보자. ‘손’과 ‘발’은 아주 쉽고 기초적인 단어다. 그런데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너는 손이 없니 발이 없니?’ ‘손발이 묶였다’ 같은 표현을 구사한다면 어떨까? 다들 ‘한국어 실력이 어느 경지에 올랐다, 적어도 초보는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영어도 마찬가지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I washed my hand of you)’, ‘너는 손이 없니 발이 없니?(Where’s your hands?)’ ‘손발이 묶였다(They hold my both hands)’와 같은 표현이 널리 쓰인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This is on me. 간단한 문장이고 모르는 단어도 없다. 미국과 영국에서 일상생활에 널리 쓰이는 표현이다. 하지만 그 뜻을 정확하게 아는 독자들은 얼마나 될지. 위 문장의 뜻은 ‘오늘은 내가 낼게’다. 응용문장 This is on the house는 ‘오늘은 집에서 냅니다’, 즉 ‘(가게 사장님이) 서비스로 드립니다’이다. This is my turn(오늘은 내 차례입니다), I’ll treat you도 역시 ‘오늘은 내가 낼게’다.

모르는 표현은 아무리 반복해서 들어봐야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알고 나면 들리고, 그렇게 들린 것은 곧바로 나의 지식이 된다. 영어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쉬운 단어로 이뤄진 일상적인 표현을 찾고, 이를 반복해서 사용해보자. 미국이나 영국 영화, 드리마를 보다 ‘아는 표현’이 나오면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느낌이 들 것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영어를 재미있게 공부하는 길도 활짝 열린다. 처음부터 정상을 바라보면 쉽게 지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음 한 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