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보수 르네상스'를 꿈꾸며…
지난 4·13 총선 결과는 대다수 보수 지지자들에게 충격을 안겼을 것이다. 야당은 지난 4년간 국정을 거의 마비시켰다. 거기에 야당 표가 두 쪽으로 갈렸으니 여당은 한때 국회선진화법 폐지가 가능한 180석 이상도 가능하리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 선거에서 대한민국의 표심은 거품을 터뜨리듯 보수 여당을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여당의 패인을 선거 말미에 터진 친박-비박 싸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오만, ‘옥새 소동’ 같은 것으로 돌리지만 이는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여당의 행태는 매를 맞을 만했지만 그간 국회를 수시로 마비시키고 국정에 훼방만 일삼은 야당의 행태에 어찌 비교하겠는가. 국민은 이런 야당의 행태에도 불구하고 여당을 버린 것이다. 여당 패배의 본질은 ‘민심이 변한 것’이다. 그간 한국 사회의 좌편향이 쌓일 만큼 쌓이다가 마치 세월호가 기울 듯 임계점을 넘어 이번 총선에서 대침몰을 시작한 것일 수 있다.

오늘날 보수 정당을 싫어하는 청장년세대가 매년 증대하고 있다. 이는 오랜 기간 좌파의 노력과 보수의 태만이 겹쳐진 결과다. 한국의 국력은 자유시장경제 아래 키워졌으나 그 문화적 생태는 좌파가 점령해 형성해 왔다. 영화·드라마·인터넷·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는 타락한 기득권자, 갑(甲)의 횡포, 흙수저의 비극이 일상적으로 비쳐진다. 재산권·공권력·경쟁 같은 보수적 가치는 없는 자를 핍박하는 무기로 등장한다. 이런 학습이 자신의 실패와 불행을 모두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국민, 기득권자와 그 정권을 뒤엎고 싶은 국민을 늘릴 것은 당연한 이치다.

역대 보수 정권은 이런 좌파적 선동 책술을 방치하거나 오히려 편승함으로써 스스로 보수 정당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꼴이 됐다. 여당은 공동체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 개인의 책무, 경쟁, 법치 등 보수적 가치가 지켜져야 함을 국민에게 엄중히 가르친 바가 없으며, 그렇게 가르칠 능력이나 생각도 없었다. 야당에 비해 보수 인사들은 대체로 더 잘살고 더 기회주의적 양태를 가져 ‘기득권의 표상’처럼 보였다. 이는 오늘날 야당·좌파의 관념과 정책이 도덕적 권위를 얻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은 거대한 시련기를 맞이하고 있다. 조선업과 해운업은 생사를 건 대수술에 들어갔고 많은 주력 산업이 구조조정에 임박해 있다. 한국이 당면한 수많은 위험 중 가장 큰 위험은 아마 ‘국민 마인드의 사회주의화’일 것이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새로운 개혁이 필요한 절체절명의 상황이지만 개인의 문제를 모두 정부 해결에 의뢰하는 ‘무책임 사회’에서 혁신·개혁 따위는 발생할 수 없다. 이대로 한국이 좌파 포퓰리즘의 지배 아래 가라앉을지 다시 부상할지는 향후 건전한 보수 정신이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호주 시드니에 사는 한 동포가 한국의 개나리가 너무 아름다워 자기 집마당에 옮겨 심었다고 한다. 개나리는 호주의 맑은 공기와 좋은 햇볕을 받아 가지와 잎은 한국에서보다 더 무성했지만 꽃은 결코 피지 않았다. 알고 보니 한국처럼 혹한의 겨울이 없는 호주에서는 개나리꽃이 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튤립, 백합, 진달래 등도 추운 겨울을 견뎌야 마침내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의 보수는 편하게 자라 자기만 아는 보신주의, 기회주의, 무임승차가 습관화됐다. 고난과 시련의 과정이 없어 자신이 지켜야 할 이념과 가치를 쉽게 포기해 오늘의 ‘보수의 위기’를 맞이했다. 이제 정권을 빼앗겨 절박해지면 그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까. 과거 좌파들처럼 자신의 이념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투쟁하는 집단이 될 수 있을까. 그리된다면 지금 위기는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 보수 지도층이 스스로 특권을 줄이고 보수적 가치를 지키려는 집념으로 투쟁하고 도덕적·인격적 우위를 정치의 전면에 세우도록 개혁한다면 우리는 미래 보수의 아름다운 르네상스 시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봉 중앙대 명예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