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독일 군대
19세기 중반까지 프랑스는 영국을 라이벌로 여기면서도 독일은 한 수 아래로 봤다. 프랑스가 수백년간 군사·경제강국으로 군림할 때 독일은 낙후된 봉건 연방국가였다. 이런 우열은 1870~71년 프랑스의 보불전쟁 패배로 단숨에 역전됐다. 파리를 점령한 독일(프로이센)군의 행진 모습은 프랑스인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19세기 말 독일은 영국마저 제치고 유럽 최강국으로 떠올랐다. 통일과 산업화, 촘촘한 철도망 등이 원동력이었다. 클라우제비츠, 몰트케 같은 프로이센 전략가들이 전격전, 참모제도 등을 개발해 군사이론을 완성했다. 폴 케네디는 《강대국의 흥망》에서 독일의 보불전쟁 승리는 군사체제의 승리이며, 군사체제는 그 나라의 독립된 부분이 아니라 전체성의 한 국면이라고 지적했다.

흔히 융통성 없고 일처리에 철두철미한 사람을 ‘독일 병정’이라고 부른다. 나치 군대의 일사불란함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긴 탓이다. 하지만 독일 군대는 ‘무데뽀’와는 거리가 멀었다. 2차대전 당시 미군이 매뉴얼 중심인 반면 독일 군대는 임무 중심의 지휘체계로 더 효율적이었다. 지휘관이 목표와 우선순위만 정해주고 세부사항은 아래로 위임하는 방식이다. 독일 기업 중에 유독 ‘히든챔피언’이 많은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강점은 종종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독일은 우수한 군사체제를 과신해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말았다. 2차대전 후 군대가 해체됐으나 공산주의 확산을 계기로 1955년 재무장이 허용됐다. 서독에 연방군(Bundeswehr)이 결성됐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도 가입했다. 서유럽에서 보기 드물게 징병제 국가였다. 독일 연방군은 냉전기 서유럽 방위의 주력군으로 최대 60만명에 육박했다. 그러나 1990년 통독 이후 계속 줄어 작년 말 17만8000명 수준이다. 2010년엔 아예 모병제로 전환했다.

독일이 25년 만에 처음 병력 1만4300명을 증원한다고 발표해 눈길을 끈다. 러시아 위협, UN 평화유지군(PKO) 활동, IS 격퇴 등이 명분이다. 병력 상한선(18만5000명)도 해제될 전망이다. 미국이 NATO 회원국에 방위비 확대를 요구한 데 대한 응답인 셈이다. 독일 군대가 확충돼도 주변국의 반발은 적다.

자연스레 일본과 비교된다. 일본 자위대는 치안유지 조직이지 정식 군대는 아니다. 해외 파병도 극히 제한적이고 NATO 같은 집단방위체제에 편입되지도 못했다. 일본은 독일만큼만 풀어달라고 주장한다. 그러자면 먼저 독일만큼의 진정한 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