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제살리기가 최우선이라는 명령
20대 국회의 경제성향은 중도좌파로 분류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의원을 배출한 4개 정당의 경제 공약을 분석하고, 당선자 수로 가중평균한 결과 중도좌파 성향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중도좌파 정당으로, 정의당은 좌파정당으로 분류됐다. 이 세 정당은 경제민주화, 고용할당, 사회적 경제 기본법 제정, 법인세 인상, 큰 정부, 보편적 복지 등 반(反)시장적 경제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놀라운 점은 새누리당이 우파나 중도우파도 아니고 중도파 정당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경제민주화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된 이후 나타난 정치구조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일자리중심 성장, 신성장동력 육성, 노동개혁, 규제프리존 도입 등 우파~중도우파적인 공약을 내놓았지만 동시에 사회적 기업 활성화, 최저임금 인상 등 중도좌파적인 정책은 물론 대·중소기업 성과공유제 확대, 고교무상교육 확대 등 좌파적인 정책도 공약에 포함시켰다.

영국 독일 등 유럽에서는 경제가 호황이어서 자산거품 등 분배악화 우려가 있을 때는 좌파가 집권해 분배개선을 꾀하고 침체기에는 우파가 집권해 경기회복을 추진하면서 안정성장을 지속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경제는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과연 중도좌파 국회가 추락하는 경제를 살리고 위기국면을 돌파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한국 경제는 장기추락을 지속해 실질적인 청년실업자가 150만명을 헤아리고 3년간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좀비기업’이 15%에 이른다. 30대 그룹도 계열사 1050개 중 완전자본잠식 80개 등 3분의 1 정도가 재무위험 상태에 처해 있다. 대외환경도 한국 경제에 우호적이지 않다. 중국 경제는 경착륙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유럽과 일본은 돈풀기를 지속해야 할 형편이고 미국마저 회복세가 둔화하고 있다. 한국의 수출 증가율이 16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하고 있는 배경이다. 주력산업은 적자가 수조원씩 쌓여 구조조정이 초미의 과제로 떠올랐다. 이런 가운데 등장한 중도좌파 국회가 구조조정, 노동개혁, 경제활성화보다 고용할당,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고자 하면 구조조정이 어그러지면서 기업부실이 금융부실로 전이돼 외국자금 이탈로 인한 금융위기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설상가상 2017년 대선정국을 앞두고 극한대결로 치달을 경우 1997년 외환위기 상황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무디스,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조정하는 등 위기 가능성을 경고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다행히 야당에서 실업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매우 어려운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진일보한 발언이다. 어렵게 나온 구조조정 주장에 이어 ‘원샷법’ 보완과 노동개혁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줬으면 한다. 남아도는 인력과 설비를 사용할 동남권신공항 건설 등 ‘한국판 뉴딜정책’을 병행하는 그랜드디자인도 필요하다.

한국 경제는 추락이냐 반등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신속히 추진하고 신성장동력산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노동개혁법, 서비스업활성화법 등 관련법을 빠른 시일 내 통과시켜야 한다. 해외로 나간 기업들이 되돌아올 수 있도록 기업투자환경도 획기적으로 정비하면 희망은 있다. 경제민주화의 수준도 여야가 조속히 합의하는 등 정치리스크, 정책불확실성을 제거해야 기업이 투자에 나서고 일자리도 창출해 분배도 개선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잘못된 처방은 반드시 위기를 불러들인다. 더 큰 비극을 맞닥뜨리기 전에 여야 모두 초당적으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오정근 < 건국대 특임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