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기업 구조조정 필요성을 들고나왔다. 그는 엊그제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외환위기 때처럼 부실기업의 생존을 연장시키는 구조조정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과잉시설이 있는 분야는 과감하게 털어내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 대표의 발언인지 귀를 의심케 한다. 그동안 굵직한 부실기업 처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사건건 구조조정에 반대해온 야당이기에 더욱 의구심을 품게 된다. 더민주는 구조조정에 불가피하게 동반되는 근로자 해고에 ‘결사반대’를 외치며 구조조정 자체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해온 전력이 있다. 기아자동차도 그랬고, 한진중공업 사태 때는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원정시위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러던 야당 대표가 느닷없이 앞장서 구조조정을 거론했으니 귀를 씻고 들을 일이다.

당장 김 대표의 진의가 궁금하다. 그는 경제민주화 전도사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불쑥 구조조정에 협조한다고 언급한 것은 간단한 변화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내년 대선을 겨냥해 수권정당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라고도 해석한다. 일종의 홍보용 레토릭이라는 얘기다. 어차피 해운 조선 철강산업 등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숟가락만 얹어 놓은 것이란 분석도 있다. 김 대표가 “조선산업 등에 부실한 기업이 많다”며 조선산업을 직접 언급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더민주 내에서 얼마나 컨센서스가 형성됐는지도 의문이다. 최운열 비례대표 당선자처럼 김 대표 발언에 동조하는 이들도 있지만 신중한 자세를 보이는 이도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김종인 발언 전문의 맥락이다. 구조조정에 대한 근본적 실업대책이나 고용대책을 조건으로 내건 것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더민주는 좀 더 분명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구조조정이라면 무조건 반대하던 종전 입장을 정말 바꾼 것이라면 그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조건을 달아 ‘노동자 보호’라는 이미지만 걷고 구조조정은 좌초시킬 생각이라면 곤란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원내 제1당이다. 덩치에 걸맞은 책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