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설계 상담이 노후준비의 첫 발…한 살이라도 어릴 때 받아야
“이 제품 진짜 끝내줍니다. 이번에 장만하세요.” “이 서비스는 정말 놓치면 안 됩니다. 틀림없이 만족하실 거예요.”

소비자는 매일 수없이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권유받는다.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부터 신문 TV 휴대폰 인터넷 등으로 쏟아지는 광고까지 합하면 기가 질릴 정도다. 대부분 투자자들이 기업들의 광고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선택에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판단 대상을 줄여야 하는 것이다.
재무설계 상담이 노후준비의 첫 발…한 살이라도 어릴 때 받아야
치열한 경쟁을 뚫고 판단 대상이 된 제안은 어떻게 처리할까. 경영학자 프리스타드(Friestad)와 라이트(Wright)가 1994년 소개한 설득지식모델(persuasion knowledge model)에 따르면 소비자는 제안자(상품·서비스 판매자)의 설득 동기와 전략을 자신만의 지식(설득지식)을 통해 분석하게 된다. 설득지식은 “저 사람(판매자)이 왜 저런 제안을 할까? 나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을 풀기 위한 소비자들이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를 의미한다. 설득지식을 쌓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사회생활 경험이 적은 신입사원들이 불필요한 고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설득지식이 부족해서일 수 있다.

생애재무설계 교육을 나가 보면 나름대로 설득지식을 발휘하는 수강생들을 만날 수 있다. 인생 100세 시대, 자산관리 방법, 연금 준비 방법 등 일반적인 내용을 설명한 뒤 각자의 상황에 맞는 솔루션은 개인별 재무설계 컨설팅을 통해 모색하라고 조언하면 반응은 두 가지로 갈린다.

이들은 각각 ‘목표추구자’ 유형과 ‘설득감시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목표추구자 유형은 교육자의 조언에 동의하고 재무설계 컨설팅을 자신의 목표로 삼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제안자에게 추가적인 정보, 이를테면 ‘믿을 만한 재무설계사를 추천해달라’와 같은 것을 요구한다. 설득감시자 유형은 제안자의 조언이 자신의 설득지식에 비춰볼 때 유용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그 조언을 무시한다.

이때의 설득지식은 재무설계 컨설팅에 대한 그동안의 부정적 경험이나 편견이다. 이 유형의 수강생들은 “그거(재무설계 컨설팅) 받아봤는데 보험만 팔려고 들더라” 또는 “받아봤자 뭐 특별한 게 있겠어”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이런 반응에 대해서는 재무설계사들의 반성이 필요하다. 사실 무료 재무설계 컨설팅을 표방하면서 충실한 재무설계보다는 금융상품 판매에만 열을 올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론 컨설팅 서비스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려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부족한 탓도 있다. 지난해 펀드투자자 조사에 따르면 재무설계 컨설팅을 받아 본 사람의 비중이 19.5%에 불과할 정도로 아직 낮기 때문에 앞으로 컨설팅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업계 노력과 무료 컨설팅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목표추구자 유형이라고 해서 모두가 재무설계 컨설팅을 받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노후설계 방법에 대한 재무설계 컨설팅을 받으려는 목표추구자 유형을 생각해보자. 일부 사람은 바로 실행에 옮겨 컨설팅을 받지만, 다른 일부는 “좋다는 것은 알겠는데, 바쁘다”며 실행을 미룬다. 이렇게 노후준비를 위한 재무설계 컨설팅을 받으라는 설득에 동의하면서도 당장은 바빠서 받을 짬이 없다며 미루는 사람들의 성향을 설명할 수 있는 게 ‘시간해석이론’이다.

심리학자 트롭(Trope)과 리버먼(Liberman)이 주장한 시간해석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시간적으로 멀리 있는 대상은 추상적, 본질적, 특징적인 점에 집중해 해석하고, 시간적으로 가까운 대상은 구체적, 표면적, 사소한 점에 주목해 해석한다. 예를 들어 친구와의 여행이 아직 먼 훗날이면 좋은 경치, 맛있는 음식, 친구와의 즐거운 시간 등을 상상하지만, 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갖고 갈 물건, 여행지에서의 구체적인 교통수단 정보 같은 세부적인 사항에 신경을 쓰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은퇴가 본인에게 가까운 일이라고 느낄수록 구체적인 점에 주목하게 되므로 노후설계 방법에 대한 재무설계 컨설팅을 미루기보다는 당장 받으려는 욕구가 강해진다.

지금까지 재무설계 컨설팅을 받으라는 제안을 자신의 설득지식으로 무시하는 설득감시자보다는 목표추구자가 되라는 것과 노후설계 방법 관련 재무설계 컨설팅 받기를 미루지 말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노후설계 방법에 대한 재무상담 경험 유무에 따라 노후를 위한 경제적 대비 여부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재무상담을 받은 사람 중 노후 대비를 하는 사람 비중은 76.2%인 데 비해, 재무상담 경험이 없는 사람 가운데 이 비중은 51.4%에 불과했다.

재무설계 컨설팅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충실한 재무설계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업계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100세 시대를 축복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해질 것이다.

장경영 한경생애설계센터장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