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사 '콕 찌르기'] 청소년기는 자기 정체성 확립 시기
현대문명에 가해진 4대 충격이라는 말이 있다. 위에서 아래로 가해진 충격은 기독교와 이슬람, 밑에서 위로 가해진 충격은 공산주의, 밖에서 안으로 향한 충격은 자연과학, 안에서 밖으로 향한 충격은 심리학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은 인간이 인간의 내면, 즉 정신세계를 체계적 논리적으로 탐구한 첫 번째 학문적 시도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청소년기의 심리적 특징은 무엇일까.

중요하고 위험한 삶의 세 시기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에 따르면 우리 삶에는 중요하고 위험한 세 시기가 있다. 영유아기, 청소년기 그리고 중년기다. 다른 시기들은 조금 관리가 부족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세 시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삶이 어려워진다. 영유아기는 무한한 돌봄을 받아야 하는 시기다. 인간의 유아는 다른 포유류에 비하면 매우 연약하다. 예컨대 말은 태어나자마자 바로 걷는다. 인간은 주변의 섬세한 관리가 없다면 생존을 이어갈 수 없다. 생존에 성공한다 해도 누군가가 적절하게 돌봐주지 않으면, 다시 말해 살아가는데 필요한 친밀감을 형성하지 않으면 평생을 성격장애로 살아갈 확률이 높다. 인생의 8단계 숙제 중 신뢰현성, 자율성 발휘, 주도성 갖기를 완수해야 하는 시기다. 예컨대 부모가 이이를 강압적으로 대한다고 하자. 아이는 생존을 위해 자율성과 주도성을 포기하고 ‘말 잘 듣는 아이’를 연기한다. 아이를 힘으로 누르는 부모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어른이기 쉽다. 술 중독, 도박 중독 등 중독(addiction)에 빠진 경우는 영유아기의 주도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경우다.

청소년기는 자기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 문제가 생기면 평생을 주관 없이,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신의 희망보다는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람의 인정에 목을 매다 보니,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정서적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 독립적 개인으로 살기보다는 살아남으려고 열심히 일하는 기능적 인간이 되기 쉽다. 노년에 이르러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경우다.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재미있게 산다.

고개쳐드는 억압된 욕구들

중년은 청소년기와 심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미뤄두었거나 억압했던 욕구, 소망들이 고개를 쳐든다. 청소년기는 신체적 심리적으로 없던 것들이 생겨나는 시기다. 중년기는 있던 것들이 없어지는 시기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청소년기는 용량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새 프로그램과 어플리케이션이 깔리는 시기이고 중년은 성능이 떨어진 컴퓨터를 돌리기 위해 잘 사용하지 않는 기능들을 없애야 하는 시기다.

청소년기의 정체성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이성교제를 할 때 문제가 생긴다. 데이트는 자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시간, 돈, 에너지를 써서 상대방을 만나는 일이다. <태양의 후예>에 ‘연애란 그대가 해도 되는 일을 굳이 내가 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대사가 나왔다.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은 나누지 못하고 가지려고만 한다. 두 가지 경우다. 하나는 ‘상대에게 올인하기’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를 지배하기’이다.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대학교 김용태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전체 여성 살인피해자의 47%가 애인이나 배우자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유엔마약범죄사무소 2013년 통계).’ 올인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뜻이다. 내가 이만큼 헌신하니 너도 나에게 헌신해야 한다고 자기만의 계산에 빠져있는 경우다. 상대방에게 올인할 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이 상대방을 무한정 쫓아다니는 것이다.

본인들은 로맨틱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을 믿지 않거나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 심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를 괴롭혀서라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보여주려는 몸짓 허세와 과시

상대를 지배하려는 사람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행동은 데이트 폭력이다. 상대를 때리는 행동은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며,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의사를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관철하겠다는 이기적인 행동이다. 폭력을 행사한 뒤 진심으로 사과하고 엄청나게 잘해주다가 다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보이는 습관 가운데 하나다. 이런 사람은 상대방과 친밀한 감정을 형성하기 어렵다. 김용태 교수에 따르면 ‘친밀감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다. 존중이란 말의 뜻은 내가 원치 않아도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인다는 얘기고 그것이 친밀감의 특징이다. ... 데이트할 때야말로 자기를 주어야 하는 시기인데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은 사람은 줄 것이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무엇을 주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주는 대신 얻기 위해 끝까지 쫓아다니며 올인하는 쪽으로 가거나 아니면 상대를 지배하는 쪽으로 간다.’

청소년기와 중년을 관통하는 단어는 ‘허세’와 ‘과시’다. 유아기와 아동기는 별다른 고민이 없는 시기다. 청소년기는 공부, 외모 등을 주변사람들과 비교하고 남들보다 무엇이든 더 잘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증가하는 시기다. ‘허세’와 ‘과시’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격을 줄여보려는 몸부림이다. 심리학 용어로는 ‘방어기제’라고 한다. 누군가를 의식해서 사실과 다른 것을 보여주려는 몸짓이다. 정체성이 확고한 사람은 자신의 변화를 인정하고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물론 데이트도 상대방을 존중하며 멋지게 한다. 나는 나의 주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서 사는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