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동남아시아판 우버' 그랩택시 CEO 앤서니 탄, 미국 차량공유서비스 우버에 대적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미국 차량공유 서비스 회사 ‘우버’에 대적하는 현지 기업이 있다. ‘동남아시아판 우버’로 불리는 ‘그랩택시’가 그 주인공이다. 지역 사정에 밝다는 현지 기업의 장점을 살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등 6개 국가에 진출했다. 그랩택시는 지금까지 1300만건의 다운로드 건수를 기록하며 동남아 1위 차량공유 서비스 앱(응용프로그램)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랩택시의 아이디어는 2011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재학 중이던 한 청년으로부터 나왔다. 말레이시아 출신 앤서니 탄(35)이 고향에서 택시를 잡기 어려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손쉽게 택시를 잡을 수 있는 콜택시 앱을 구상한 것이다. 이후 차량공유, 카풀, 오토바이 택시, 배송 등 분야로 확장을 거듭하며 동남아 교통 시스템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고 있다. 그랩택시는 일본 소프트뱅크, 중국 GGV캐피털 등에서 투자금을 유치했으며, 기업가치는 15억달러(약 1조7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3대째 자동차와 인연

탄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사업가 기질을 보였다. 다른 아이들이 의사나 소방관을 장래 희망으로 꼽을 때 6세의 그는 사업가가 되겠다고 말하곤 했다. 11세 때는 부모와 함께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만화책 컨벤션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수많은 만화책을 사온 탄은 주위 친구들에게 이를 팔아 꽤 많은 돈을 벌었다.

집안 분위기도 한몫했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가였다. 일본 차량 수입판매 업체인 탄청모터홀딩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사업가 기질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역시 자연스럽게 가업을 물려받아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탄이 가업을 잇길 포기하고 뜻밖의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집안 내력 덕분이었다. 그의 증조부는 택시기사였고, 조부는 말레이시아에서 일본 닛산 자동차 판매 사업을 했다. 여기에 아버지의 사업까지 3대째 자동차와의 인연을 이어간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창업가 정신과 3대째 내려온 자동차와의 인연은 그가 콜택시 앱을 만들겠다고 선뜻 나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다.

일상에서 느낀 불편함이 창업으로

2011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만난 한 친구가 탄을 보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찾아왔다. 탄을 만난 그는 말레이시아 택시 시스템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았다. 말레이시아 택시 시스템은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복잡한 교통 상황에 택시 잡기가 어려웠을 뿐 아니라 외국인에게 바가지 요금을 받고, 택시기사는 영어를 하지 못했다. 탄의 친구는 말레이시아어를 하지 못했다.

친구는 탄에게 “너의 증조할아버지는 택시기사였고, 너의 할아버지는 말레이시아의 일본 자동차 회사에서 일했으니 이것으로 무언가를 해보자”며 새로운 사업을 제안했다. 탄 역시 말레이시아에서 택시를 잡기 어렵다는 점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탄은 그해 ‘마이택시’라는 콜택시 앱을 개설해 하버드 비즈니스 플랜 경연에서 2위로 입상했다. 그랩택시의 시작이었다.

그는 지난해 테크인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그랩택시를 개발한 이유를 “말레이시아의 택시 시스템이 복잡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운전기사들은 충분한 돈을 벌지 못했고 일을 좋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여성들은 안전하게 택시를 이용하지 못했다”며 “(그랩택시 서비스를 시작한 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고 덧붙였다.

그랩택시는 택시기사와 승객을 빠르게 연결해줄 뿐 아니라 예약시 앱에 거리와 요금이 제시돼 바가지 요금을 낼 우려가 없다. 또 택시기사에게 영어 등 교육을 제공해 외국인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

택시기사들의 거부감에 고비

그랩택시의 시작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콜택시라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를 동남아 시장에 소개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랩택시는 2012년 6월 말레이시아에서 첫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택시기사들은 새로운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승객을 태우지 못한 채 거리를 빙빙 돌면서도 새 장비와 기술을 활용하는 데는 거부감을 느꼈다. 탄은 택시가 몰리는 공항과 쇼핑몰, 주유소 등을 돌아다니며 택시기사들을 만났다. 점차 택시기사들이 직접 그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2014년 그랩택시를 사용하는 택시기사 수는 2만5000명으로 늘었다. 이후 2015년 말 16만명, 2016년 3월 20만명에 달하는 택시기사가 이 앱을 활용하고 있다.

그랩택시는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2013년 3월에는 필리핀, 그해 10월에 싱가포르와 태국, 2014년 2월에 베트남, 그해 6월에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총 6개국 30여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랩택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현지화에 있다.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은 인도네시아에서는 현금 결제를 가능하게 했다. 택시기사에겐 앱을 깔기 위해 필요한 스마트폰을 살 수 있도록 대출 서비스도 제공했다. 교통 정체가 극심한 인도네시아와 태국에서는 오토바이 택시인 ‘그랩바이크’를 운영하고 있다.

동남아 시장에서 우버와 경쟁

그랩택시는 우버 스타일의 차량공유 서비스 그랩카, 카풀 서비스 그랩히치, 오토바이 택시 서비스 그랩바이크, 운송서비스인 그랩익스프레스 등을 운영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동남아 시장에서 우버 스타일의 앱 간 경쟁은 심화될 전망이다. 우버가 동남아 시장에 진출한 데다 태국과 인도에서 오토바이 택시 서비스까지 내놨다. 게다가 인도네시아에서는 현지 기업 ‘고젝’과 오토바이 공유 서비스에서 맞불을 예정이다.

그랩택시의 미래 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탄은 싱가포르와 중국 베이징에 연구소를 세워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작년 페이스북 개발자였던 주웨이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했다.

또 우버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 디디콰이디, 인도 올라, 미국 리프트와 손잡고 올해부터 상호 연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랩택시 측은 이를 통해 세계 50% 지역에서 그랩택시를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부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정부 규제로 서비스가 중단되는 등 문제를 겪었던 우버와의 차별점이다. 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소비자를 바라보고 각국 정부와의 공조에도 집중한다”고 말했다. 그랩택시는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 등에서 정부의 승인을 받은 서비스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