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오 페라리 인터코스그룹 회장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 정원에서 “한국 증시에선 화장품업종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며 한국에 상장을 추진하는 이유를 밝혔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다리오 페라리 인터코스그룹 회장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 정원에서 “한국 증시에선 화장품업종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며 한국에 상장을 추진하는 이유를 밝혔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짙은 감색 스트라이프 슈트와 새하얀 와이셔츠, 물방울무늬 넥타이 차림의 다리오 페라리 인터코스그룹 회장은 은발이 잘 어울리는 이탈리안 노신사였다. 올해로 73세(1943년생)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걸음걸이가 반듯했고 얼굴엔 기업가적 열정이 넘쳤다. 왼손에는 악어가죽 줄이 눈에 띄는 큼지막한 시계를, 오른손에는 반지를 걸어두는 빨간색 실크 팔찌를 차고 있었다.

페라리 회장이 인터코스그룹을 창업한 건 44년 전인 1972년. 성장성이 높은 아시아에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그는 지난해 말 신세계인터내셔날과 50 대 50으로 투자, 신세계인터코스코리아라는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이번 방한은 경기 오산시 가장산업단지에 생산공장 및 연구개발(R&D)혁신센터를 세우기 위한 게 목적이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 늦어도 내년 초 국내 유가증권시장에 이탈리아 본사나 아시아 지주회사를 상장하기 위해 최근 삼성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하는 등 상장 준비에도 본격 착수했다. 인터코스가 상장하면 유럽 기업으로는 국내 첫 상장이다. 햇살이 좋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만나 단독 인터뷰를 했다.

▷한국에 여러 번 온 걸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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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한국이 너무 좋아요. 한국 여성들은 메이크업을 완벽하게 하고 예쁩니다. 업무 협의를 위해 만난 사람들도 예의가 바르고 일을 잘하며 창의력이 뛰어납니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한국어로 발음) 문화도 좋아합니다. 당장 한국 사람이 되고 싶을 정도입니다.”

▷한국 증권시장에 상장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간단합니다. 중국 등 성장 속도가 빠른 아시아시장 진출을 확대하기 위한 것입니다. 한국 상장을 통해 아시아시장 공략에 필요한 생산, 연구개발(R&D) 역량을 대폭 강화할 계획입니다.”

▷왜 아시아입니까.

“아시아가 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건 아니지만 성장성 측면에서는 최고입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연매출 증가율이 35%에 달했습니다. 올해는 더 가파를 것으로 전망합니다. 아시아를 공략하려면 아시아 여성이 원하는 게 뭔지 100% 완벽하게 알아야 합니다. 아시아시장에서는 비싸더라도 독창적이고 품질 좋은 제품이 잘 팔리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꼭 투자해야 할 시장이라고 봅니다.”

▷굳이 한국 주식시장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론 화장품시장과 증권시장은 다르죠.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건 한국 증시에서 화장품업종이 다른 업종보다 높게 평가되고 있다는 겁니다. 상장사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이 40배가 넘는다는 것을 알았고 그만큼 투자자들이 화장품업체의 미래 성장성에 높은 가치를 둔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영국 투자은행 로스차일드가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고 있는 삼성증권을 연결해준 것도 한국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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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코스 본사를 상장하는 겁니까.

“그건 아직 미정입니다. 중국 법인 세 곳과 한국 법인(신세계인터코스코리아)을 거느리고 있는 아시아 지주회사인 홍콩 인터코스아시아홀딩스를 상장하려고 했는데 여러 사람이 본사 상장을 권유하고 있어 고민 중입니다.”

▷상장을 통해 들어온 자금은 어디에 활용할 계획입니까.

“아시아 사업을 확대하는 데 쓸 겁니다. 아시아 여성들이 선호하는 색상, 기능성 성분 등을 연구개발하는 데 투자하고 생산시설 등도 늘릴 겁니다. 1년 전 한국에 R&D센터를 세운 데 이어 이번엔 생산시설도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더 확장할 계획입니다.”

▷최근 한국 화장품산업의 성장성이 둔화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화장품 시장만 보면 성장성이 예전 같지 않다고 봅니다. 중국 기업들의 성장세가 훨씬 가파르지요. 하지만 한국 화장품 시장의 진짜 기회는 수출에 있습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에서도 많은 기회를 얻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특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과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부문에서 기회는 더 많다고 봅니다. 한국 기업들은 트렌드세터인 한국 여성들을 상대로 성장했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 코스맥스와 한국콜마도 인터코스와 비슷한 사업모델을 갖추고 있습니다. 경쟁이 예상됩니다.

“유럽시장에서 경쟁사로 볼 만한 곳이 없습니다. 색조 화장품 OEM·ODM 부문에서는 독보적이라고 봐도 되죠. 한국에서는 색조 위주의 코스맥스, 기초화장품 위주의 한국콜마를 경쟁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코스맥스에서 우리 회사를 찾아와 기술을 배워갔는데 지금은 많이 성장했습니다. 그들을 경쟁사로서 존중합니다. 다만 각자 잘하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정면으로 경쟁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서로 차별화된 기술이 있는 겁니다.”

▷인터코스만의 경쟁력은 어떤 것입니까.

“혁신입니다. 4000명에 이르는 전 세계 직원 중에 600명이 혁신적 기술 개발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기능성 성분 조합을 어떻게 할지, 다양한 색상을 섞는 방법과 비율을 어떻게 조정할지 등에는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합니다. 제품별로도 차별화된 R&D를 하고 있습니다. 립스틱과 펜슬, 파운데이션, 파우더 등 제품별로 개발자들을 따로 두고 있습니다. 한국에 세우는 인터코스 R&D센터에 기대가 높은 이유도 우리의 44년 노하우를 접목해 아시아 여성을 위한 독창적인 제품을 개발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제품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까.

“아시아시장 전용 제품이죠. 우린 복합성분 개발 능력이 뛰어나고 아이섀도 등 눈화장 제품의 배합 기술에 특화돼 있습니다. 특히 색조 제품은 나라별로 다른 소비자를 만족시키기가 어렵습니다. 수준이 높고 변화에 민감한 한국 여성의 눈높이에 맞으면서 비슷한 성향을 지닌 중국 등 아시아 여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색조와 기초 제품을 선보일 겁니다.”

▷아시아 기업들을 인수합병(M&A)할 계획은 없습니까.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싸게 주고 살 생각은 없습니다. 한국 기업은 매력이 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고, 중국 기업은 아직 성장하는 단계여서 좀 더 시간을 두고 볼 생각입니다. 기술력, 다양한 소비층을 겨냥한 상품 등은 우리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아주 새로운 기술을 가진 새로운 분야의 회사를 인수할 계획입니다. 독창적이면서 스토리가 있는 회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창업자로서 기업가 정신의 요체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개발한 제품을 사랑해야 한다는 겁니다. 안 그러면 회사를 경영할 수가 없어요. 또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변화를 주도해나가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다고 중도에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스스로 격려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엔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해줄 조언은 무엇입니까.

“지금은 변화의 주기가 5년, 10년이 아니에요. 매년 달라지고 있습니다. 벤처사업가라면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변화 자체가 삶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 있고 성장해나갈 수 있습니다. 변화는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 길밖에 없습니다.”

페라리 회장은…

30세에 이탈리아에서 조그만 화장품 생산공장을 차린 뒤 장인정신을 앞세워 세계 최대 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로 키운 ‘글로벌 화장품업계의 거물’이다. 1943년 1월4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1961년 밀라노의 레오나르도다빈치스쿨을 졸업하고 화학·공학 전공분야에서도 학위를 취득했다.

1972년에 인터코스그룹의 전신인 B.B.C.S.r.l을 설립해 화장품 생산 및 판매업에 뛰어들었다. 직접 제품을 개발하고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경영하는 열정적 최고경영자(CEO)로 유명하다.

미국 패션전문지 WWD는 2014년 그를 ‘세계 뷰티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인터코스그룹 창업자이자 회장으로 CEO도 맡고 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