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대학의 사회적 책임
대학(university)의 어원은 라틴어로 ‘전체’를 뜻하는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다. 대학은 12세기 유럽에서 등장할 때부터 공동체의 사회적 삶 전체를 의식하고 있었다.

대학이란 존재는 연구라는 문화의 창조, 교육이라는 문화의 전수, 봉사라는 문화의 나눔을 임무로 해 성립한다. 한국의 대학은 압축형 고도성장으로 일컬어지는 특별한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국익 중심의 지식 분배 기구와 같은 성격을 갖게 됐다. 대학에 입학한 인재들이 근대 산업을 뒷받침하는 지식을 분배받고 사회의 지도적 지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대학은 교육을 가장 중시하고, 봉사는 등한시했다. 학생은 내면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란 질문을 제기할 기회를 잃기 쉽다. 사회에 어떤 보탬이 될지, 어디에서 어떤 존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야말로 대학이 학생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근본적 문제다. 이런 배경으로 최근 대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공동체 운영 방식이 과거 하향식 ‘통치’에서 공동체 구성원 간 협력에 기반한 상향식 ‘협치’로 변화하는 현실에서 대학의 사회적 책임이 갖는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필자가 재직 중인 이화여대에서는 ‘이화인이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이란 모토 아래 2000년 결성된 다양한 봉사단이 교육과 건축, 의료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저소득 농어촌, 도시 빈민 지역의 결손가정 어린이와 청소년을 돕고 있다. 해외에선 저개발 국가뿐만 아니라 한인 입양아, 재일동포를 위해 봉사와 문화 교류를 실천 중이다. 자폐인의 사회 진출을 돕는 사회적 기업 오티스타 역시 이화여대의 산학협력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이화여대는 ‘2016 대학사회책임지수’ 평가 1위를 차지했다.

학생을 맡아 가르치는 대학의 임무는 막중함과 동시에 모순을 안고 있는 것 같다. “대학의 가르침은 개성의 자유로운 발달을 저지하기 때문에 대학을 중퇴한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회고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르치지 않으면 교육이 성립하지 않는다. 대학이 우리 사회 전체의 운명을 의식하고 공동체에 봉사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대학의 자기 갱신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최경희 < 이화여대 총장 president@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