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명보험사들이 2020년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도입을 앞두고 과거 고금리로 판매한 상품으로 인해 동시다발로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독일 알리안츠그룹이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을 중국 안방보험에 300만달러(약 35억원)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고금리 판매 상품의 역마진과 강화된 자본 규제를 감당하기보다는 신속히 철수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알리안츠생명 고위 관계자는 “고금리 상품 역마진에 따른 부담이 앞으로 1조4000억원 정도이고 올해부터 유럽에서 솔벤시Ⅱ(유럽 보험사 지급여력 제도)를 시작하면서 독일 본사로서는 추가 자본 확충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확산되는 '알리안츠 매각' 쇼크] 고금리 상품 '부메랑'에 자본확충 부담까지…위기의 보험사들
보험사들은 고금리 상품에서 발생하는 역마진과 IFRS4 2단계 도입에 따른 부담은 알리안츠생명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5개 생명보험사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금리확정형으로 판매한 상품의 보험료 적립금은 약 201조2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연 4%대 미만 금리 상품의 적립금은 14조1700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연 4%대 이상으로 현재 금리 수준에서 볼 때 역마진이 불가피한 상품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연 7%대 확정금리를 보장한 상품의 적립금도 79조3400억원이나 된다.

생명보험사들이 이 같은 금리확정형 상품 가입자에게 만기 때 약속한 보험금을 돌려주려면 자산 운용을 통해 그만큼의 수익을 거둬야 한다. 그러나 최근 2년간 국내 보험사의 운용자산 이익률은 연 4.2~4.3% 수준이다. 보장 금리와 운용자산 이익률 차이만큼 손실을 보는 셈이다.

보험사들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설계사를 동원, 고금리 상품 가입자를 찾아다니며 다른 상품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했지만 연 6%대 이상의 고금리 확정형 보험상품 적립액은 여전히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합쳐 116조3000억원이나 남아 있다. 한 생명보험사 사장은 “과거 팔아놓은 고금리 상품 때문에 매년 초에 약 1000억원의 적자를 떠안고 영업을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2020년 도입 예정인 IFRS4 2단계는 보험사 경영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IFRS4는 총 43개 국제회계기준서 가운데 보험계약에 적용되는 기준이다. 2단계 기준서는 보험부채를 평가하는 방식을 원가에서 시가평가로 전환하는 게 핵심이다.

지난해 말 금감원과 한국회계학회가 연 콘퍼런스에서 정도진 중앙대 교수는 시가평가를 반영한 보험부채적정성평가(LAT) 방식을 도입하면 보험 부채가 2014년 회계 기준으로 약 42조원 증가한다는 추산 결과를 발표했다. 보험사들의 자본이 그만큼 줄게 되는 만큼 막대한 자본확충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고금리 확정형 장기상품을 많이 판매한 생보사엔 큰 충격이 불가피하다. 자본금이 부족하거나 추가로 확충할 여력이 안되는 보험사는 자본잠식에 빠질 가능성이 있고, 보험업 건전성 감독기준인 지급여력비율(RBC)을 충족하지 못하는 회사도 나올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고금리 상품의 역마진과 IFRS4 2단계는 모든 보험사가 당면한 위기 요인”이라며 “언제든 제2의 알리안츠생명이 나올 수 있지만 마땅한 대응책이 없는 게 고민”이라고 말했다. 매물로 나와 있는 PCA생명과 ING생명의 매각이 어떻게 이뤄질지 보험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류시훈/김일규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