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순혈주의 맹신에서 벗어나자
‘알파고 열풍’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법론에 대해서는 각기 의견이 다르지만, 창의적인 인재가 다음 세대를 이끌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한국 기업은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낼 수 있을까.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려면 창의적 인재의 특징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일반인들과 달리 주어진 현상을 다각도에서 본다. 다각도에서 보는 만큼 의견도 다양하다.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정확하게 대답을 못한다.

창의적 인재는 타고난 것일까. 학자들은 평범한 사람들도 창의적 인재의 다각적인 사고방식을 흉내낼 수 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방법은 서로 다른 시각을 동시에 접하는 것이다. 다양한 시각을 얻기 위해 두 권 이상의 책을 번갈아 읽는 방법이 그중 하나다. 두 책의 내용과 스타일을 비교하고, 한 책의 주제를 다른 책의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책보다 더 강력한 방법이 있다. 경험과 관점이 다른 사람과 만나 대화하는 것이다. 집단지성이라는 개념을 소개한 책 ‘그룹 지니어스’는 “집단지성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비범한 성과를 내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실제 창의적인 조직일수록 성별, 인종, 국적 등을 가리지 않고 다양성을 추구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 혼란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 혼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가지고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다시 돌아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알파고 팀은 미국 회사 구글을 대표해서 왔다. 그런데 딥마인드 대표 허사비스는 그리스계 아버지와 싱가포르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영국인이다. 알파고의 손 역할을 하면서 대국에 임한 아자 황은 대만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수학 후 영국 딥마인드에 입사했다. 이세돌은 단지 세계 최고 수준의 컴퓨터 프로그램과 대국한 것이 아니다. 미국, 영국, 대만의 인재들이 모인 국제적 두뇌집단과 바둑을 둔 셈이다.

시사점은 분명하다. 다양한 관점과 경험을 가진 인재를 모은 조직이 결국에는 뛰어난 개인을 이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활용하는 조직이 순혈주의 조직을 이길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 예측은 이미 세계적 화두가 되고 있는 무인차 개발 프로젝트를 둘러싼 경쟁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무인자동차 기술을 개발한 구글은 자동차 공유 서비스 업체 우버와 손잡고 수년간 무인택시 사업을 준비했다. 구글의 욕심을 알아챈 우버는 구글과 결별하고 카네기멜런대 로봇공학센터 교수와 연구진 약 40명을 채용해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트위터 팔로어 200만명을 대상으로 무인차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할 인재를 공모하고 있다. 후발업체인 일본 도요타는 미국 MIT 출신 엔지니어들이 세운 무인차 기술 기업 ‘제이브리지 로보틱스’를 인수하고 무인차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세계적인 업체들이 앞장서서 이합집산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때 일본 기업들이 내수시장에 의존해 독자적인 기술과 상품을 개발하다가 세계 경제에서 외톨이가 된 갈라파고스 현상에 빠졌다는 분석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일본은 태도를 바꾸었다. 청년 인구가 줄어들면서 일본 경제를 되살릴 키워드로 해외인재 영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탐내는 대표적인 대상은 문화적으로 유사하고 언어습득도 빠른 한국의 인재들이다. 어쩌면 오늘도 적지 않은 한국인 청년들이 일본 기업으로 이동할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고 배우자. 혼란을 줄이고 통일성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한국 사회가 순혈주의의 우수성을 맹신해 고립을 자초하지 않길 바란다.

김용성 <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