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몽펠르랭 소사이어티 서울 총회에 거는 기대
세계 주요국이 불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 골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주류경제학이 가르치는 바에 따르면 통화 공급을 늘리고 금리를 낮추면 지출이 증가해 경제가 회복돼야 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이 효과가 없자 시중으로 돈이 풀려나가도록 일반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초과 지급준비금 등에 이자를 주는 대신 오히려 수수료를 받는, 이른바 마이너스 금리 정책까지 등장했지만 속수무책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오랫동안 통화 공급을 늘려 저금리를 유지한 결과 소비자 요구와 과오 투자로 공급 구조가 어긋난 데 따른 것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하지만 주요국 중앙은행은 지속적으로 통화 공급을 늘려 불황의 골을 깊고 길게 끌고가고 있다. 주류경제학 교과서에는 이런 논의가 없기 때문이다.

경쟁은 더 낮은 가격과 더 나은 품질로 거래 상대방에게 더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해 다른 참여자를 이기려는 대항적 행위다. 따라서 인위적인 진입장벽이 없는 환경에서 특정 기업이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한 것은 다른 기업보다 소비자에게 더 나은 기회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이 자원 배분을 왜곡하거나 소비자 복지를 해친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독과점이나 완전경쟁을 다루는 주류경제학의 시장구조론은 특정 기업이 어떤 과정을 통해 그런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게 됐는지에 대한 논의는 없고, 다만 지금 특정 시장에 존재하는 기업의 수만 따진다. 이에 바탕을 둔 공정거래법은 당연히 자유시장 질서를 뒤틀고 성과를 왜곡해 평가한다. 공정거래법이 경쟁촉진법이 아니라 경쟁억제법이 되는 이유다.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완전경쟁시장은 경쟁이 치열한 과정이 아니라 경쟁이 모두 끝나 더 이상 경쟁하지 않는 많은 기업이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경쟁의 끝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가진 쿠르노가 제시한 모형이다. 그런데 현실 경제는 끊임없이 경쟁이 이뤄지는 과정에 놓여 있을 뿐이다. 완전경쟁시장을 기준으로 하는 ‘시장의 실패’라는 개념이 잘못된 이유다.

생산이론으로 넘어가면 문제의 심각성은 한층 더하다. 기업은 베일 속에 싸인 생산함수로 표현되고, 이질적인 자본재를 모두 동질적이라고 가정하므로 자본재는 모든 생산단계를 뛰어넘어 언제나 전용이 가능하다. 대부분 거래는 계약으로 가능하고 기업 조직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 결과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고 이질적인 자본재를 각 생산단계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업가의 기능은 들어설 여지가 없다. 불확실성을 원천으로 하는 이윤과 그 기능에 대한 논의도 있을 수 없다.

주류경제학의 소비자-생산자 이론에서는 경쟁 과정을 통해 알아내야 할 모든 사항이 이미 알려져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경제학은 그저 수학적 해를 얻기 위한 공학으로 둔갑한다. 그런 경제학을 배우는 대학원생들이 정작 경제학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터득하고 축적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몇 군데 언뜻언뜻 그림자처럼 보일 뿐, 주류경제학에는 행동하는 인간이 없다. 경제는 수학적 함수관계로 엮여 잘 프로그램된 기계처럼 돌아갈 뿐, 소비자와 생산자들이 행동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모든 것이 다 알려져 있다는 현실성 없는 가정을 바탕으로 꾸며진 경제학이 실제로 돌아가는 현실 경제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작금의 세계적인 불황을 극복하고 경제학이 사람의 삶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화석처럼 굳어버린 방법론의 문제를 인식하고 오스트리아학파를 비롯한 비주류경제학에도 귀를 기울임으로써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내년 서울에서 열릴 ‘몽펠르랭소사이어티’ 학술대회는 그런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