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뛰는 경찰, 나는 사기범
“사기꾼은 다 도망갔는데 이제 와서 영장을 발부하면 어쩝니까. 제 피해금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중국 가상 화폐 ‘힉스코인’ 피해자가 31일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울분을 터뜨렸다. 올초 부산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힉스코인 금융 사기범 일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지만 ‘뒷북’ 수사라는 항변이었다.

피의자 김모씨(55) 등은 2014년 말 힉스코인 발행사인 중국 국영기업의 한국지부를 세웠다며 “가상 화폐에 투자하면 투자금을 열 배로 불려준다”고 투자자들을 속였다. 서울 역삼동에 설립한 힉스베네란 회사를 기반으로 서울 부산 등지에서 수차례 투자 설명회도 열었다. 한국경제신문은 이미 작년 11월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열린 힉스코인 투자 설명회가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상세히 알렸다.

▶본지 2015년 11월27일자 A1, 6면 참조

하지만 본지 보도 이후에도 경찰 수사는 더디게 진행됐다. 사기범들은 연말까지 투자 설명회를 계속 여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피해 사례와 의심 글이 수십여개씩 올라오고 있었지만 당국은 마땅한 제재방안을 찾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피해자는 1만여명, 피해금액은 300억원으로 불어났다.

해당 사건을 담당하는 부산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지난해 9월 사건을 접수하고 수사에 들어갔지만 증거를 찾을 수 없어 체포영장 발부가 늦어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부산지방경찰청이 사기범들의 현장 사무실에 들이닥쳤을 때는 컴퓨터 한 대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기범들은 모두 잠적한 뒤였다. 경찰은 올초가 돼서야 시스템 서버, 계좌 내역 등 증거를 잡을 수 있었다.

투자자들은 수사가 늦어져 피해가 더 커졌다고 땅을 치고 있다. 사기범들이 힉스코인과 제휴를 맺었다고 선전한 대형 유통회사에 확인만 했어도 거짓임을 가려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취재 과정에서도 피의자들의 주장이 거짓임을 전화 몇 통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투자 설명회에서 힉스코인을 소개하던 대학 교수도 가짜였다.

박상용 지식사회부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