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도, 예금자도 돈 굴릴 만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작년 3월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1.75%로 전격 인하한 뒤 1%대 초저금리 기조가 고착화한 데다 경기 침체마저 길어지고 있어서다. 금통위는 지난해 6월 기준금리를 연 1.5%로 한 차례 더 내렸다.

은행들은 가계 및 기업대출 확대를 통한 이자 장사에 목을 매고 있다. 수익을 내기 힘든 채권 등 유가증권 투자는 줄어드는 추세다. 시중은행 자금담당 임원은 “저금리와 경기 침체로 인해 대출 외에 뾰족한 자산운용 방안을 찾기 어렵다”며 “이제 가계 및 중소기업 대출도 포화라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연 1%대 기준금리' 1년] "돈 굴릴 데 없다"…대출에 목맨 은행들, 작년에 106조 늘려
◆‘박리다매 대출’에 의존

한국경제신문이 28일 국민 신한 KEB하나 우리 등 17개 은행의 자산 추이를 따져본 결과 은행권의 대출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7개 은행의 자산은 전년(2026조8000억원)보다 138조원 불어났다. 이 중 대출은 106조6000억원 늘었지만 주식, 채권 등 유가증권은 16조7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자산 대비 대출 비중은 74%로 0.3%포인트 늘어났지만 유가증권 비중은 15.4%로 0.3%포인트 빠졌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연 3% 초반대였던 2011년의 자산 대비 대출 비중이 72.2%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은행의 대출 쏠림 현상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작년 은행권 자산 대비 대출(1601조5000억원) 비중은 4년 새 1.8%포인트나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유가증권 비중은 1%포인트 감소했다.

은행들이 대출 장사에만 의존하는 이유는 초저금리 장기화에 경기둔화 여파까지 겹쳐서다. 대출 외에는 돈 굴릴 만한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은행 자금담당 임원은 “경기 변동성이 커지면서 대체투자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은커녕 들고 있던 상장사 주식도 줄이는 추세”라며 “채권도 유동성 조절을 위해 국공채 위주로 최소한만 남겨놓고 있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박리다매식 대출’ 외에는 뾰족한 자산운용 방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이런 분위기 탓에 은행들은 고객 저변 확대를 위한 개인 예금은 반기지만 기업이나 기관의 거액 예금 예치는 달갑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포화상태 대출 시장

문제는 짭짤한 수익을 보장하던 가계 및 중소기업 대출 시장이 사실상 포화 상태라는 데 있다. 은행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가계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1200조원을 넘기면서 부실화 위험이 커졌다는 우려가 많다.

대기업 대출에선 이미 출구전략을 짜고 있다. 은행들은 매년 10조원 안팎씩 늘려온 대기업 대출을 지난해엔 되레 4조원가량 줄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이 대출 규모를 늘려 예대마진 폭을 키우는 박리다매식 대출이 서서히 한계에 부딪히는 모양새”라며 “앞으로 무작정 자산을 늘리기보다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추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나빠진 수익성도 고민거리다. 은행 수익의 80%가량을 차지하는 이자이익이 낮은 금리 탓에 계속 줄고 있다. 예대금리 차이를 보여주는 순이자마진(NIM)은 2015년 말 기준 1.58%다. 사상 최저 수준이다. 그렇다고 신사업이나 수수료 등으로 비(非)이자수익을 늘리기도 쉽지 않다.

사정이 이렇자 은행들은 최근 금융당국에 미국처럼 계좌를 개설할 때마다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떼는 계좌유지수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아직 국내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이경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대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선 장기적으로 유가증권 투자 비중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채권 외에 중위험·중수익 상품이나 대체투자 등과 같은 수익성 높은 상품에 대한 투자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