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벨기에와 이슬람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함께 베네룩스 3국으로 불리는 벨기에는 경상남북도만 한 크기의 작은 나라다. 200여종이나 되는 맥주, 세계적인 맛을 자랑하는 초콜릿이 유명하다. 화가 루벤스의 조국이고 만화 스머프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오줌싸개 동상이 있는 수도 브뤼셀은 1993년 출범한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곳이다. 인구 1120만명에 1인당 GDP가 4만6877달러(2013년)나 되는 선진국이다.

프랑스, 독일과 국경이 닿아 있고 영국과는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수많은 외침에 시달렸다. 특히 1, 2차대전 때는 독일군에 완전히 점령된 최대 피해지였다.

며칠 전 브뤼셀공항과 지하철역에서 200여명의 사상자를 낸 폭탄테러가 발생하면서 어떻게 이런 선진국이 테러리스트 소굴이 됐는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 원인은 행정 불안에 있다. 벨기에는 작은 나라지만 지역과 언어가 나눠져 갈등이 심하다.

북쪽 플랑드르 지역에 사는 ‘플라밍’들은 전 국민의 57%로 네덜란드어를 쓴다. 남쪽 왈로니아지역에 사는 ‘왈롱’은 인구의 32% 정도인데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1%밖에 안 되지만 독일어를 공용어로 쓰는 지역도 있다. 지방 정부가 워낙 강해 1993년 출범한 연방정부가 힘을 못 쓰고 있다. 2010~2011년엔 541일간 장관들이 없는 ‘무내각’ 상태가 된 적도 있다.

지방정부가 강력하다 보니 경찰도 6개 행정조직마다 다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행정이나 치안은 불안한데도 도시는 국제적인 개방도시다. 테러리스트들이 언제든 열차를 타고 유럽 어느 곳이든 도주할 수 있다. 벨기에는 특히 밀항도 비교적 쉬워 불법 난민, 이민자들이 더욱 몰려들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이 암약하기에 좋은 환경이 된 것이다.

벨기에는 2차대전 이후 이슬람 이민자를 많이 받아들여 현재 이슬람 인구가 50만명이다. 브뤼셀 인근의 몰렌베이크는 인구 10만명 가운데 3만명이 무슬림이다. ‘유럽 내 이슬람의 정치적 수도’라고까지 불린다. 파리 테러 등의 주범들이 모두 이 도시 출신이다. 몰렌베이크의 실업률은 벨기에 평균(9%)에 비해 3배가 넘는 30%에 달한다.

결국 이민자들에 대한 정책 실패가 ‘외로운 늑대들’을 자라게 한 것이다. 여기에 이슬람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은 심한 편이다. 벨기에가 서유럽에서 IS 등 극단주의 무장단체에 가입한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된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