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 사이에 벌어졌던 세기의 대결이 끝났습니다. 경기가 벌어지기 전만 해도 ‘바둑은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하고 변화가 무쌍하기에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 수 없는 분야’라고 생각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은 바둑을 전략게임이라고 봅니다. 상대의 생각에 반응하면서, 심리적 체력적인 면까지를 고려하며 종합적인 판단을 내려는 것이 바둑의 본질이라는 것이지요.

바둑은 구도의 길이었다

[세계문화사 '콕 찌르기'] 인공지능이 '바둑 계산법' 바꿨다…전략게임이 아니라 계산게임이다
바둑을 도(道)나 철학(哲學)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는 것입니다. 바둑에는 객관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가 존재하며, 그것을 어렴풋하게 알아가는 것이 바둑 구도자의 공부방법이라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수 천 년 동안 불변의 고정관념이었습니다. 수 십 년 전만 해도, 바둑 기량의 최전성기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찾아온다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경험과 판단력이 쌓이고, 원숙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후라야 ‘종합적인 전략’을 세울 수가 있을 테니까요. 한국의 이창호 9단(1975년생)이 16세 때 세계대회 결승(1992년 동양증권배)에 오른 것은 그래서 바둑 역사를 바꾸는 혁명적 사건이었습니다.

결승상대인 린하이펑 9단(林海峰·1942년생)은 ‘이창호는 내 막내아들보다도 나이가 어리다. 그 점이 나에게 심리적 부담을 준다’라고 했습니다. 좀처럼 상대의 공격을 허락하지 않는 두터운 기풍 탓에 ‘이중허리’라 불리던 린하이펑 9단은 소년 이창호에게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패했습니다.

이후로 10 여 년 간 이창호는 세계 바둑계의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바둑나라에서 온 소년’, ‘전생 고수의 화신’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고 중국 기사가 모조리 패하자 한 중국 신문은 ‘태산을 옮길 수는 있어도 돌부처(이창호 구단의 별명)를 흔들 수는 없다’는 제목을 뽑기도 했습니다. 일본 기원의 원로는 ‘아무도 이창호를 이길 수 없다. 수 천 년을 이어온 우리의 공부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우리 모두가 바보이거나 결론을 둘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자탄했습니다.

이창호9단이 바꾼 바둑철학

[세계문화사 '콕 찌르기'] 인공지능이 '바둑 계산법' 바꿨다…전략게임이 아니라 계산게임이다
이창호 이후 바둑의 본질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었습니다. ‘전략게임’이 아니라 ‘계산게임’이라는 것이지요. 계산방법이 어마어마하게 복잡하기는 하지만. 예컨대 상대의 대응에 따라 나의 계산도 그 때 그 때 매순간 달라져야 한다는 점에서 바둑은 어쩌면 고차방정식과 미분의 개념을 품고 있는 게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창호 신드롬’ 이후 세계 바둑계의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요즈음 세계 정상권 바둑 기사들의 연령대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입니다.

계산이라면 아무래도 그 나이에 생애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무도 넘볼 수 없을 것 같던 이창호의 철옹성을 무너뜨린 기사가 바로 이세돌 9단입니다. 이창호 9단의 기풍은 ‘싸우지 않고 이긴다’였습니다. 부분전투에서 이길 확률이 높은데도 물러서는 이창호를 보고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창호는 달랐습니다. ‘전투를 벌여 10% 실패의 확률이 있다면 취하지 않는다. 적게 이기더라도 100% 이기는 길로 간다’라고 했습니다. 굴복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사실은 남들이 할 수 없었던 계산을 다 해놓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세돌은 바둑 역사에 나오지 않는 기발한 착점으로 이창호의 계산능력을 허물었습니다. 이세돌 역시 남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계산방법’을 찾아냈던 것이겠지요. 아마도 알파고가 이세돌을 대국상대로 결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측가능한 수를 구사하는 기사와는 ‘뻔한 승부’ 밖에는 보여줄 수 없으니까요.

바둑의 본질이 계산이라면, 인간은 기계를 이길 수 없습니다. ‘계산’에 관한 한 인간의 두뇌는 기계에 비해 말할 수 없이 느리고 비효율적입니다. 어쩌면 이세돌 9단이 이번에 거둔 1승이 인간이 인공지능을 상대로 바둑에서 거둔 마지막 승리일 수도 있습니다. 알파고의 수를 두고 처음에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두지 않는다’, ‘저런 식으로 두면 야단맞을 수’라는 평이 나왔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알파고가 놓은 돌들이 ‘그 순간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인간이 계산하지 못하는 것을 인공지능이 하고 있었다는 명쾌한 증거입니다.

인간의 바둑문화는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기계에게 정상의 자리를 내준 상태에서, 인간끼리 벌이는 바둑이 의미가 있을까요? 바둑은 미래에도 살아남을까요? 현재의 직업 가운데 상당수는 사라질 것이 확실합니다.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을 인간이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아무리 삽질을 열심히 해도 굴삭기 한 대를 당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근력(筋力) 말고도 지력(知力)에서도 기계가 사람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이 이번 대국을 통해 입증되었다는 점입니다.

[세계문화사 '콕 찌르기'] 인공지능이 '바둑 계산법' 바꿨다…전략게임이 아니라 계산게임이다
저는 바둑이 살아남을 것으로 예측합니다. 기계와 인공지능이 만들 수 없는 영역을 얼마나 찾아내고 어떻게 상품화 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이세돌은 졌지만 그가 보여준 ‘드라마와 이미지’에 대중들은 열광했습니다. 이것이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 다음 주에는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 글을 써보겠습니다. 미래학자들이 없어질 직업이라고 꼽은 직종들을 예시하고 그 직업이 왜 없어진다고 보는지, 어떤 직업은 왜 살아남는다고 보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미래는 생각보다 가까이 와있고 변화 속도는 우리가 느낄 수 없을만큼 빠릅니다. 인류의 최대 미덕은 ‘변화에 대한 적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