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해외에서 느끼는 수출 한국의 위기
미국 뉴욕에 있는 한국계 은행 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최근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급히 출장을 다녀왔다. 서울 본점 지시로 거래 업체 미국법인의 물류창고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본사가 회사 보유의 철강 재고를 미국으로 수출하는 척하면서 외부로 빼돌린 것 같다는 첩보 때문이었다. 물량을 확인한 뒤 만일의 경우 압류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지시도 함께 떨어졌다.

수출물량은 선적서류에 기재된 그대로 보관돼 있었다. 은행 관계자는 “업체가 수출어음을 네고해 대금을 모두 받아가 본점 담당자가 당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역보험공사 해외 사무소도 현지 출장이 부쩍 늘었다. 중소기업 제품을 수입한 해외 바이어들이 부도를 내고 잠적한 경우가 많아져서다. 수출보험금 지급에 앞서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직원들을 보내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고 통화가치도 하락해 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중남미 국가 바이어들이 경계 대상이다.

반면 KOTRA에는 해외 바이어 발굴이 최우선 과제로 떨어졌다. 전체 해외 사무소에 ‘수출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는 비상령이 떨어졌지만, 믿을 만한 수입상과 중소기업을 연결시키는 것이 만만치 않아 목표 채우기가 버겁다고 한다. 미국은 국제 유가 하락 여파로 셰일업계가 얼어붙으면서 철강 등 재고가 언제 팔릴 수 있을지 기약하기 힘든 상태다.

대기업도 상황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한 전자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유럽과 러시아, 남미 시장까지 모두 판매실적이 목표치를 밑돌았다”며 “올해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 제품을 파는 경우도 있다. 현지 판매 가격을 유지하면 환차손으로 손해를 입지만 가격을 올리면 시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 기업 관계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중견기업들까지 밀어내기를 해야 할 정도”라며 “문제는 이런 식으로 수출을 해도 1년 전보다 20% 가까이 수출이 줄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자금 사정은 나빠지고, 믿을 만한 바이어는 찾기 어렵고, 환변동 위험은 커지는 ‘삼중고(三重苦)’. 미국 현지 수출 지원 담당자들이 체감하는 ‘수출 한국’의 현실이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