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타성이 적이다
한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정부를 중심으로 조심스러운 낙관론이 나오고 있다. 비관론자들은 작년의 경제성장률이 2.6%에 그치고, 청년실업률이 9%를 넘고 있으며, 한국 경제의 주요 성장동력인 수출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며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수출 감소폭이 줄어들고 있고 소비가 살아나고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신호가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또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에 불안심리 확산을 차단해야 경제정책의 긍정적 효과가 선순환되고 극대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양쪽 모두 나름 맞는 얘기다. 하지만 좀 더 크게 보면, 한국 경제의 잠재적 성장가능성이 계속 떨어지고 있고 이런 추세를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평균성장률이 4%, 3%, 2%대로 떨어진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금리 인하나 재정정책 등을 통한 경기부양은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 경제의 장기적 성장잠재력을 높이지는 못한다. 이보다는 부실기업과 산업에 대한 착실한 구조조정과 기술혁신 등이 장기적 성장잠재력 제고에 더 필요할 것이다. 특히 이런 구조조정과 혁신을 바탕으로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현재 대부분 한국 기업들은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있어서 한계에 부딪힌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급격한 기술발전과 초경쟁 환경 속에서 우리 기업들의 성공 원천이었던 ‘빠른 추격자’ 전략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은 상황이 됐다. 이런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현재 삼성전자가 추구하고 있는 ‘선도자’ 전략으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선도자 전략으로의 성공적 전환을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큰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삼성의 메모리반도체 사업 등 몇몇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빠른 추격자에서 선도자 위치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기업이 역사상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럼 주로 어떤 기업들이 선도적 기업이 되는가? 기술혁신 등에 의해 기존 산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는 현 상황에서는 그 변화를 잘 활용하는 신생기업들이 선도기업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산업은 전기차와 무인차의 개발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기술혁신 속에서 변화하고 있는데, 기존 강자인 벤츠나 GM이 아닌 테슬라와 구글 같은 비교적 신생기업이 이 분야의 선도자로 자리 잡았다. 현재 침체된 세계 경제 속에서 유일하게 호황을 구가하는 미국의 경우 페이스북, 아마존, 테슬라, 구글 같은 신생기업들이 새롭게 생겨난 분야의 선도기업으로서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반면 기존 산업의 선도자였던 IBM, 월마트, GM,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변화된 환경에서 기존의 ‘관성’을 버리지 못함으로써 선도자 자리를 내주었다.

이런 사실은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성공한 우리 기업들도 추격자 전략의 성공에 기여한 기존의 틀을 과감히 버리고, 선도자 전략에 맞게끔 리더십, 전략, 조직문화, 프로세스 등을 통째로 바꾸지 않으면 선도기업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국 경제가 지속적인 하락국면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높이려면 꾸준한 구조개혁과 기술혁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적 도움도 필요하다. 정부 입장에서는 바닥인 경기를 살리는 즉각적 경기부양책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길게 보고 우리 경제의 장기적 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한 기업 경쟁력 강화 쪽으로 경제정책의 중심축이 옮겨져야 할 것이다.

특히 창의적 혁신을 통해 선도기업이 될 잠재력을 가진 기업 육성에 힘써야 한다. 삼성전자처럼 한국 기업사에 한 획을 그은 저력을 바탕으로 선도자 전략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도 정책적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명현 < 고려대 교수·경영학 cho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