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 E클래스의 글로벌 시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번 출장을 시승회라고 불러도 될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시험 삼아 타 본 것은 맞지만 일반적인 시승과는 좀 달랐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시승을 할 땐 운전자 관점에서 궁금해 할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조향감이나 가속 및 제동 성능, 승차감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E클래스는 이 중 상당 부분을 자동차 스스로 조작한다. 물론 모든 기능을 끄고 운전자가 제어할 수 있지만 시속 120㎞ 이상 고속에서도 스스로 판단해 운전한다. 운전자가 손과 발을 떼고 있는 데도 말이다. 처음엔 설마했지만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E클래스의 운전 실력을 믿게 된다. 그래서 이번엔 운전자로서 차의 성능을 평가하는 대신 E클래스가 얼마나 운전을 잘하는지에 집중했다.
[시승]가장 가까운 인공지능 '10세대 E클래스'를 경험하다

3월 첫째주의 포르투갈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푸근한 날씨덕분인지 시승 분위기도 한결 여유롭고 한가했다. 시승은 리스본 시내와 해안가, 고속도로를 자유롭게 내달릴 수 있도록 마련됐다. 오전에는 호텔을 나와 유유히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평일 출근시간을 지난 터라 차가 별로 없었다. 초행길인지라 사실 차를 살펴볼 겨를도 없이 운전에 집중했다. 다만 운전석에 앉자마자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계기판에서 센터페시아 상단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디스플레이창이 거대하다. 내비게이션을 작동하는데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헤드업디스플레이까지 무려 세 곳에서 길을 안내한다. 계기판은 속도계로, 센터페시아는 오디오 조작 화면으로 바꿨다. 이 디스플레이창은 모바일기기 바탕 화면을 변경하듯 내용을 바꿀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시승]가장 가까운 인공지능 '10세대 E클래스'를 경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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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40분 운전 후 시내에서 30㎞ 떨어진 에스토릴 서킷에 도착했다. 서킷에 도착하니 바람이 좀 불었다. 다시 나가서 주변을 돌까 했지만 서킷 내 마련된 프로그램이 다양해서 체험하기로 했다. 신형의 특장점에 따라 총 4가지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안락하고 편안한 주행을 위한 '컴포트', 안전 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세이프티', 주차를 돕는 '파킹'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각종 자율주행 기술을 확인하는 '하이웨이' 등이다.
각 파트별로 겹치는 기능들이 있었지만 모두 경험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일반 운전자들에게도 친숙한 컴포트 시스템을 체험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컴포트와 세이프티는 위험한 사고상황을 가정한 주행이어서 전문 인스트럭터가 운전했다. 인스트럭터는 극한의 상황을 연출하며 신형에 적용된 기술을 이끌어냈다. 덕분에 조수석에 앉아서도 충분히 첨단 시스템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속은 울렁거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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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속력을 올려 풍선으로 제작된 자동차와 보행자에 돌진했다. 앞서 달리는 자동차나 횡단보도를 지나는 보행자를 인식하지 못한 상황을 재연한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 시속은 180㎞쯤 도달했고 물체와의 거리도 충돌 직전에 다다랐다. 운전자는 한눈을 팔아 제동 시점을 놓친 상황이다. 이 경우 사고로 이어져야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E클래스는 순식간에 브레이크를 작동해 멈춰섰다. 충돌을 막기위해 경고하는 수준에서 완전히 자율적인 판단으로 인한 제동까지 실현한 것이다. 만약 속력을 계산해 급정지를 하지 않고 감속만으로 충돌을 피할 수 있다면 이 경우엔 보다 안전하게 속력을 낮추는 것으로 사고를 예방한다. 앞 차와 보행자뿐 아니라 교차로에서 급하게 진입하는 물체까지 인식할 수 있다.
세이프티에서는 차선 이탈 방지를 시험했다. 역시나 고속으로 주행하는 상황은 동일하다. 그러다 차선을 변경하려는 시점 혹은 의도치 않게 차선을 넘어갈 때 옆이나 뒤에서 오는 상대차를 인식하지 못한 경우 차의 반응을 확인했다. 이 때 E클래스는 차선을 이탈한 방향의 앞뒤 브레이크를 사용해 충돌을 막았다. 최근 신차들이 채택하는 차선 이탈 경고에서 한층 발전해 안전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기능까지 가능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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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 주차는 사실 지난해 BMW 신형 7시리즈 출시 때에도 본 적이 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외부에서 차를 직선으로 넣고 빼는 것이 가능했다. 이는 좌우 간격이 좁은 주차장이나 차고에서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E클래스 역시 스마트폰에 벤츠 앱을 깔면 같은 기능을 실현할 수 있다. 헌데 보다 많은 기능을 포함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후 움직임은 물론이고 전후면 주차도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다. 운전자가 차내에 앉아 변속을 해야했던 자동 주차보다 성숙해졌다. 물론 정확성도 훨씬 높아졌다. 주차시 문콕이나 긁힘으로 인한 분쟁(?)도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시승 프로그램의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하이라이트인 하이웨이, 즉 고속도로 주행만 남았다. 앞서 경험한 모든 편의안전 시스템을 실주행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인스트럭터가 동승하지만 운전대는 참가자가 쥔다. 그러자 앞서 경험했던 아찔한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면서 문득 의심이 들고 불안해진다. '다 짜여진 각본이 아니었을까', '아직 시스템이 습득하지 못한 위험상황들이 발생하면 어떡하나', '발을 떼는 척하고 내가 운전할까' 등등.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E클래스를 믿기로 했다. 믿어야만 하니까.
[시승]가장 가까운 인공지능 '10세대 E클래스'를 경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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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스티어링 휠 왼편 아래에 위치한 칼럼 시프트를 앞쪽으로 두 번 당기니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켜졌다. 차간거리나 속도 등을 설정하는 건 이제 익숙하다. 앞차와의 거리를 맞춰 가감속을 했다. 꽤 자연스럽고 재빠르게 뒤를 쫓는다. 동시에 시속 70㎞ 이상으로 속력이 오르면 차선 유지 기능이 작동한다. 운전대에서 손을 떼더라도 스스로 차선을 읽어 주행한다. 처음엔 안절부절하며 운전대 위에 어정쩡하게 손을 올려놓고 있었는데 금세 익숙해졌다. 직선뿐 아니라 코너를 돌더라도 꽤 믿음직스럽게 조향하기 때문이다. 주변 상황에 따라 최대 60초까지 혼자 운전할 수 있다. 약 1분을 넘어서면 계기판에 경고등이 뜨는데 이 때 운전자가 주의하고 있다는 기척을 해줘야 한다. 굳이 운전대를 잡지 않더라도 3시와 9시 방향에 위치한 터치 버튼에 손가락을 갖다대면 다시 자율 주행이 가능하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번거롭다고 반응하지 않으면 차는 이를 운전자 심장발작과 같은 사고상황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점차 속력을 줄여 결국 차를 멈추고 경고등을 켠다. 우스갯소리로 동승한 인스트럭터에게 "병원까지 데려다 주는 건 어떠냐"고 묻자 "이미 고려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위급상황임을 알리는 경고등을 켜고 갓길로 차를 빼거나, 병원과 연계해 정보를 공유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연구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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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여의 훈련(?)을 마치고 나니 E클래스에 대한 믿음이 수직 상승했다. 서킷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몇 번이고 여러 시스템을 반복해서 작동했다. E클래스에 운전을 맡기니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할 때도, 러시아워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시내를 통과할 때도 정말 편했다. 특히 과태료가 비싼 유럽에서 표지판을 읽어 제한속도를 맞춰 달리는 기능은 멍청한 내비게이션보다 훨씬 듬직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인공지능 기술 중에 가장 근접한 것이 '자율주행'이라고 한다.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밀접한 기술이어서 관심도도 높다. 자율주행은 사람보다 훨씬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사고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엄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 운전자를 대체해 자동차가 스스로 이동하는 것은 머지않은 일이고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신형 E클래스는 이러한 길목에 놓인 징검다리 같다. 몇 번째에 해당하는 돌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아마 절반쯤은 더 오지 않았을까. E클래스가 앞당길 자율주행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포르투갈(리스본)=오아름 기자 or@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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