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돈 못 벌게 하는 나라, 돈 못 버는 나라
한 국가의 ‘투자매력도’는 그 국가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볼 수 있다. 경제 성장은 투자 없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가 저성장 타개책 찾기에 골몰하고 있는 지금, 투자매력도 개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핵심적 과제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저성장이 장기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로 낮추기도 했다. 내년에도 2%대 저성장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이 이어진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외국인직접투자(FDI)를 늘리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FDI 유치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말하는 것만큼 외국자본의 투자에 열려 있는가? 안타깝게도 이 같은 노력이 물거품이 되게 하는 게 있으니 바로 외국자본에 대한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이중잣대다. 투자를 유치할 때와는 달리 유치가 성사되고 외국자본이 한국에 투자를 시작하면 돈을 얼마나 벌어 나가는지 경계하고, 벌어 나간다면 ‘국부 유출’, ‘투기기업’이란 자극적인 말로 비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업의 목적인 이윤 추구를 부도덕하게 바라보고, 돈을 벌면 한국에서 번 만큼 내놓을 것을 요구하거나 ‘먹튀’로 매도하는 것이다.

반대로 해외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한국 기업에 대한 시선은 어떨까. 삼성, 현대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은 모두 해외 시장에서 성공해 지금 자리까지 성장했다. 삼성전자는 총매출의 약 90%를 해외사업에서 거둬들이고 있고 현대자동차는 ‘미국 소비자가 뽑은 올해의 차’를 다수 갖고 있다. 삼성, 현대는 글로벌 기업으로 불린 지 오래고 한국 국민은 이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 사업하는 외국자본이나 해외 시장에서 돈을 버는 삼성, 현대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

외국자본에 대한 균형 잃은 잣대가 한국 경제의 성장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경쟁국인 중국은 물론 아시아 개발도상국 또한 한국만큼 FDI 유치에 적극적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들은 외국자본에 공정하고 열린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FDI 유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가 경제규모 자체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2012년 이후 3년간 10위권에 속해 1~2위 국가인 미국, 중국과 함께 상위권을 이루고 있다. 이는 외국인 투자에 우호적인 사회 인식과 국민 정서, 유연한 노동시장, 낮은 규제와 세금에 기인한 것이다.

외국자본에 대한 열린 사고와 시각은 필수적이다. 해외 자본이 단시간에 빠져나간다 해도 이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할 일은 아니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을 떠난다 하더라도 글로벌 기업이 오랜 시간 축적한 선진 경영기법과 노하우, 인재개발과 새로운 사업 기회 창출 등 유용한 자산을 남기고 간다. 기업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게 투자하고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에 대해선 지원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먹튀’라는 표현을 쉽게, 자주 쓸수록 한국 경제의 선진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한국 국민이 론스타 등 해외자본에 보인 배타성으로 인해 한국 투자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망설이는 외국자본이 많다. 백방으로 성장 동력을 찾아야 국가도, 기업도 생존할 수 있는 저성장시대에 언제까지 ‘외국자본은 먹튀’라는 구시대적 발상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뒤늦게 불공정 계약을 했다며 억울해하고, 이윤추구 자체를 비난하며 외국자본의 뒷다리를 잡는 행태를 보이는 한국이 글로벌 무대에서 어떻게 비쳐질지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외국기업이 들어와 돈을 벌지 못한다면, 한국도 결국엔 돈 못 버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김완순 < 고려대 명예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