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에 임명된 소설가 이문열 씨가 경기 이천 부악문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지난 2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에 임명된 소설가 이문열 씨가 경기 이천 부악문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거 참, ‘공직 맡았다’는 말은 하지 말라니까요. 그저 소설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는 건데 왜들 이렇게 야단인지….”

최근 경기 이천시 부악문원 내 자택에서 만난 소설가 이문열 씨(68)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 임명 소감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부악문원은 1998년 작가 지망생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고전을 강의하기 위해 사재를 들여 세운 곳이다.

이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베스트셀러 소설가다. 동시에 수많은 ‘안티팬’이 있는 ‘완고한 보수주의자’란 이미지도 함께 갖고 있다. 언제부턴가 그의 이름은 신문 문화면보다 사회면 또는 정치면에 더 자주 등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언론과의 직접 만남을 극도로 피했다.

지난해 6월 신장암 수술을 한 그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인터뷰 중간부터는 맥주와 소주도 한 병씩 마셨다. “전화로 간단히 하자”던 그를 설득한 끝에 시작한 인터뷰는 6시간30분 동안 이어졌다. 재단 이사장을 맡은 이유와 그동안 쌓인 세간의 오해, 문학과 사회에 대한 견해 등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공직’이란 타이틀이 붙는 것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2003년)에 한나라당 공천심사를 75일간 했던 것 때문에 20년 가까이 ‘정치적 문인’이라 낙인 찍혀 비난받아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은 무보수 비상근직입니다. 실무는 재단 운영본부에서 하고, 이사진은 관련 내용을 추인하죠. 나라의 녹을 먹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닌데 공직은 무슨 공직입니까. ‘감투 욕심나서 그런 것 아니냐’는 욕이나 듣지 않을까 지레 겁도 났습니다.”

▷이사장을 맡은 계기는 무엇입니까.

“빚진 자의 마음과 비슷한 것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만 해도 일반 독자층이 두꺼웠을 때고,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죠. 문학계만 하더라도 창비(창작과비평사)나 문지(문학과지성사)와 같은 ‘카르텔 구조’ 속에 있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정치색이 배제돼 소설가로서 후배 예술가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이사회 모임도 1년에 몇 번 안 되기 때문에 작품활동에도 별로 방해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초대 이사장인 김주영 선배가 재단 정착을 위해 많이 애쓴 것으로 압니다.”

▷선생님만큼 여러 논란에 휩쓸린 작가도 흔치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심정입니까.

“저는 이미 ‘이미지 조각으로만 남은 이문열’이 돼 버린 지 오래됐습니다. 참담하죠.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뭔가 정치적, 이념적 의도가 있을 것이라 몰고 가니까요. 여성 비하론자로 몰릴 때도 그랬고, 이른바 ‘수구 꼰대’로 몰릴 때도 그랬고, ‘호남에 편견을 가진 지역주의 작가’로 몰렸을 때도 그랬습니다. 전 자유로운 문인이고 싶었고, 제 생각과 목소리를 자유롭게 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상처와 오해가 오갔습니다.”

▷그 많은 오해 중 “이것만은 정말 아니다”고 알리고 싶은 건 무엇입니까.

“저에 대한 오해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서 어떤 걸 짚어야 할지 감이 안 잡힐 정도입니다. 다만 하나는 확실히 말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이 이야기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한때는 호남 사람들과 저를 이간질한 사람을 고소하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호남에서도 제 소설이 매우 많이 사랑받았습니다. 어느 지역 못지않게 제 책이 많이 판매됐습니다. 소설가 이문열을 아끼고 사랑해준 곳이라 정말 각별히 생각해 왔어요. 이곳 부악문원에 머문 작가 지망생 중에도 호남 출신이 많습니다. 게다가 이 좁은 나라에서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쓸데없고 위험한 발언을 했겠습니까. 외국 사람까지 독자로 삼으려고 해외 번역본도 내는데, 한국 독자를 왜 무시하겠어요. 작가로서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할 이유가 없죠. 그 일을 겪으면서 영·호남 갈등이 정말 무섭다는 걸 절절하게 실감했습니다.”

▷남·남 갈등이 훨씬 심각하다는 말씀이군요.

“남북통일에 앞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지역 간 화합도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통일을 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서로 이념은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없애려고 하는 건 더 이상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하지만 요즘 보면 사회 전반적으로 증오가 들끓어 오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증오만으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고민하는지 확실히 파악하고 서로 머리를 맞대는 지혜와 포용이 필요합니다.”

▷최근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문학의 표현 수단이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봅니까.

“저도 종이와 펜 대신 컴퓨터로 작업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비록 블로그와 SNS는 안 하지만, 이메일로 연락하고 포털사이트 검색도 합니다. 어느 시대든 전달 매체의 변화에 따라 문체도 변합니다. 만약 블로그에 글을 쓸 때 저처럼 긴 문장을 쓴다면 사람들이 안 읽겠지요. 작가의 개성을 살리는 선에서 시대에 맞게 문체를 변용하는 건 상관없다고 봅니다. 그게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요. 다만 문학의 전달 매체가 어떻게 변하든 작가로서 갈고닦아야 할 기본기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글을 잘 쓰려면 우선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독서를 많이 하지 않으면 창의력의 밑바탕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글을 잘 쓰기 위한 제1조건으로 ‘읽기’를 꼽습니다.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이른바 ‘집단지성’에 대해선 어떤 의견을 갖고 있습니까.

“집단지성에 대해선 매우 회의적입니다. 집단지성에 대한 맹목적 믿음은 경계해야 합니다. 인터넷은 일종의 광장과도 같은 공간이라고 봅니다. 인터넷에서는 한 사람이 100번 말하는 것과 100명이 한 번씩 말하는 게 구분이 안 됩니다. 의사소통 방식도 단문단답, 즉문즉답 형태가 대부분이죠. 그러다 보면 목소리가 왜곡되거나 오인될 수 있고, 내용도 부실해질 우려가 생깁니다. 또 집단지성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대중을 선동하려는 세력도 많이 있을 겁니다.”

▷예술가에게 도덕과 참여의식이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예술가와 도덕, 현실세계의 참여의식 간 관계는 수세기 동안 인류 문화사 최대 논쟁거리 중 하나입니다. ‘오로지 아름다움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고, ‘현실을 외면하는 예술가는 예술가가 아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위대한 도덕가’를 꿈꾸는 예술가도 있습니다. 무조건 뭔가 위대한 존재로 추앙받고자 하는 유혹은 받으면 안 되겠지요. 하지만 예술가에게 도덕 추구 정신이 없다면 뭔가가 빠진 듯하고, 너무 재미없을 것 같습니다.”

▷1980년대를 소재로 한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그런데 확실히 어렵네요. 한 작품에 담아내기 정말 어려운 시대란 걸 실감합니다. 제 작품의 모든 제목을 직접 짓는데,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은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전체 흐름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아직 확정하지 못했으니까요. 1980년대는 너무나 복잡한 시대였고, 그 시대를 바라보는 저 자신의 시선 역시 계속 달라지고 있습니다. 실제보다 증폭된 기억도 있고, 사라진 기억도 있죠.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가진 각기 다른 경험과 멜로디가 공존하고 부딪칩니다. 그걸 어떻게 녹여낼지 고민 중입니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우 살벌하고 거칠었던 시대인 만큼 그걸 무조건 무미건조하게만 풀기보다는 좀 부드러운 이야기도 가미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칠순입니다. 가장 큰 소원은 무엇입니까.

“소설가로서 종생(終生)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겐 그게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화두입니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 해도, 글 못 쓰고 목숨만 붙어 있다면 그게 과연 산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작가란 직업을 ‘마감’할 시기를 정하진 않았지만, 그때가 오기 전까지 계속 글을 쓸 겁니다. 글을 쓰는 게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

소설가 이문열은…

1950년 아버지가 월북한 뒤 남은 가족이 겪은 생활고와 주위의 따가운 시선,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기 어려웠던 처지 등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부조리에 대한 실존적 번민과 이념 편향에 따른 갈등의 위험 등을 다룬 작품을 많이 썼다.

[월요인터뷰] 이문열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신임 이사장 "인터넷상 집단지성 맹신하면 안 돼…즉문즉답엔 깊이가 없어"
길고 현학적이면서도 섬세한 문체, 전지적 작가 시점과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오가며 마치 이야기꾼처럼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 방식이 특징으로 꼽힌다. 종교와 역사, 예술철학과 이념 갈등 등 다루는 주제가 매우 폭넓다.《사람의 아들》에선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논하고,《금시조》에선 진정한 예술의 가치를 물으며,《영웅시대》와《변경》에선 격동의 역사 속에 나타난 좌·우익 대립과 지식인의 고뇌를 묘사한다.

《호모 엑세쿠탄스》(2006년), 《불멸》(2010년), 《변경》 재출간(2014년) 등 최근까지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1948년 경북 영양 출생 △안동고 중퇴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중퇴 △대구 매일신문 기자 △1979년 ‘새하곡(塞下曲)’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당선 △세종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부악문원 대표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제2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 △주요작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젊은날의 초상 금시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웅시대 변경 등

이천=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