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국 시장 우롱하는 SC펀더멘털
“주주제안서 내용을 거짓으로 꾸며도 처벌받지 않는 게 한국 자본시장의 현실입니다.”

1일 기자에게 전화를 건 한 자동차 부품회사 간부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지난달 23일 한국경제신문에 실린 ‘GS홈쇼핑 공격한 미국 헤지펀드 SC펀더멘털, ‘자격 미달’ 드러나 주주제안 철회’ 기사의 또 다른 피해 기업 관계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작년 1월29일 SC펀더멘털은 ‘지분 2%를 소유한 주주’라고 소개한 뒤 배당금 확대를 골자로 한 주주제안서를 이 회사에 제출했다. 이후 주주제안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 회사 주가는 크게 뛰었다. 부품사 간부는 “2014년 8월 자회사 합병 과정에서 만든 임시 주주명부를 확인해 보니 SC는 주주제안 자격을 갖추지 못한 회사였다”며 “단순 착오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큰 피해를 본 상황이었다”고 하소연했다.

3월 주주총회 직전에 등장해 주주제안 사실을 언론에 알린 뒤 시세차익을 남겨 떠나는 미국계 헤지펀드 SC의 행적을 놓고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주제안의 법적 요건(의결권 지분 1% 이상 최소 6개월 보유)이 충족되지 않은 걸 알면서도 주주제안을 했다가 거짓이 드러난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것.

문제는 현행 법상으론 법적 요건을 지키지 않은 채 주주제안을 하더라도 회사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당국이 제재할 길도 없다는 점이다. 투자 내용은 연말 주주명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언제 투자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주주제안의 적격성 여부를 알 수 없다.

SC 측은 주주제안 사실을 언론에 알리는 수법으로 상당한 시세차익을 봤다. 이들이 차익을 실현하고 빠져나갈 경우 해당 기업은 물론 소액주주들에게도 피해를 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SC는 여전히 공개 석상에서 ‘한국의 법 체계가 미국의 1970년대 수준에 불과해 행동주의 펀드의 성과가 좋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며 해외 투자자들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이 SC의 부당 행위 여부를 보고 있다지만 법적 공백을 메우지 못하면 무인지경으로 활개를 치는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공격이 끊이지 않을 것이란 걱정이 커지는 이유다.

김우섭 증권부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