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애플 대 FBI
사익, 사적 이익의 강화, 개인의 권리 보호는 근대의 표상이다. 근대 민주국가가 지향해온 가치요, 피의 대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익, 국익의 극대화, 국가의 발전 같은 공동선(共同善)과 나란히 비교해 보면 얘기는 간단하지가 않다. 단지 ‘사익과 공익의 조화’란 절충이라면 너무 교과서적이다. ‘개인과 국가의 동반 발전’ 역시 핵심은 피해간 듯하다. 어떻든 국익은 중요하겠지만 그때라도 사회적 공감, 상황 자체의 합목적성이나 효율성, 적절한 보상 같은 전제하에서의 제한적 원칙에 그칠지 모른다.

현대사회에서 사익과 공익의 충돌은 너무나 다양해서 하나의 공리나 일방적인 원칙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서구 선진국에서조차 사익과 공익 간 조화나 우선 순위에 대한 논쟁이 부단히 일어난다. 그런 논쟁이 활발하다는 것 자체가 선진사회를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선진사회일수록 공익을 이유로 개인의 일방적 희생을 강제하지 않는다. 철저히 법률에 의거하고, 법원 결정에 따르고, 의회의 판단을 존중한다.

애플과 미국 연방수사국(FBI)·법무부 간의 치열한 논쟁을 미국 밖에서 주목하는 것도 민주주의 원칙에 관한 흥미로운 관전거리기 때문이다. 핵심은 애플이 주장하는 ‘소비자 보호’와 FBI의 ‘국가 안보’ 중 어느 쪽이 우선이냐다. 애플의 만능키 프로그램 없이는 총기 난사 테러범의 아이폰 암호를 풀 수 없다니 FBI도 영화 속의 만능 수호자는 아닌 모양이다.

‘애플은 즉각 정부의 법집행에 응하라’는 압박은 트럼프 후보만의 목소리도 아니다. 영국의 FT도 ‘3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법원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있다’며 팀 쿡의 잘못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뉴욕타임스는 FBI의 요구나 법원 판단은 이해한다면서도 애플이 옳다고 두둔했다. 23일 세계 30여개 도시 애플스토어 앞에서 지지 시위가 열린다니 애플 편도 적지 않다.

그간의 논란만으로도 애플은 꽤 재미를 본 것 같다. 해독에 144년 걸린다는 보안체계는 FBI도 쩔쩔맬 정도고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정부에도 뒷문은 못 열겠다니 마케팅 전략이라면 훌륭하다. 상황은 다르지만 2014년 카카오톡의 감청영장 불응 사건을 연상시킨다. 카카오도 1년 만인 지난해 10월에야 영장에 협조키로 방침을 바꿨다. ‘법원이 아니라 의회에서 논의해 달라’는 애플의 반박 또한 자못 정치적이다. 어디서나 의회란 곳은 자칫 논란만 더 키울 것이며, 나중에 마지못해 암호를 풀어주더라도 의회 때문이라면 화살은 애플을 비켜갈 테니….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