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역외재산 자진신고, 막차를 잡아라
최근 유럽에선 일부 납세자들의 갑작스러운 소득세 수정신고가 늘었다고 한다. 스위스가 금융계좌에 대한 정보교환협정을 미국, 유럽 각국 등과 체결하자 그간 신고하지 않던 스위스 소득에 대한 세금을 미리 납부해 벌과금을 줄이려는 것이다.

이런 장면은 유럽에 국한된 게 아니다. 한국에서도 불과 2~3년 후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미 그 전주곡은 시작됐다. 지난해 초 ‘미신고 역외소득·재산에 대한 자진신고제도’가 한시적으로 6개월간(2015년 10월~2016년 3월31일) 도입됐다. 그동안 신고하지 않은 역외소득이나 재산을 자진신고하면 가산세 등을 경감 혹은 면제하고, 형사처벌도 중대한 경우가 아니면 면제해 주기로 한 것이다. 특히 외국환거래법상 신고절차를 거치지 않고 반출했던 돈도 과태료 없이 국내로 반입할 수 있고, 그 돈으로 세금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조세사면’적인 의미를 지닌다.

세법상 국내거주자인 한국인이 국제거래나 국외에서 소득이 생기면 국내 과세당국에 신고해 세금을 내야 한다. 해외부동산 취득을 위해 외화를 유출할 때도 신고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런 해외 소득이나 재산을 밝혀내기 쉽지 않았다. 한국뿐 아니라 선진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케이맨제도, 마셜제도 같은 조세피난처나 스위스의 비밀계좌가 인기를 끌었다.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국제 금융질서가 혼란해지자 세계가 공동으로 칼을 빼 든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역외탈세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역외탈세가 물고기라면 물고기를 잡는 그물망은 각국이 가진 금융정보를 교환하는 네트워크다. 세계 각국이 납세자의 정보를 교환해 마치 한 국가가 감시하는 것처럼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갖추면 조세피난처도 의미가 없어진다.

심지어 스위스도 미국의 해외금융계좌납세협력법(FATCA) 시행을 계기로 2014년 7월부터 자국의 금융정보를 다른 나라와 교환하기 시작했다. 정보교환에 앞서 스위스 은행들은 탈세를 도운 혐의로 미국 법무부와 미국 중앙은행(Fed)에 수십억달러의 벌과금을 납부해야 했다. 유럽에서 자발적인 소득세 수정신고가 늘어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한국은 금융정보의 국제적 교환체계 정립을 이끄는 선도그룹(early adopters group)에 속해 있다. 미국과는 2014년 3월 한·미 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을 맺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및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등 53개국과 다자간 협정을 맺어 2017년 9월부터 매년 1회 금융정보를 교환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인의 해외소득이나 재산이 국내 과세당국에 그대로 알려지게 된다. 정부가 미신고 역외소득·재산에 대해 자진신고 기회를 준 것도 이런 글로벌 환경 변화에 동참하는 동시에, 대상자들이 받을 충격을 분산하도록 배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로선 일거양득이다. 자진신고를 통해 해외에 숨겨진 세원을 저절로 드러내고 재정을 확충할 수 있다. 호주는 이와 비슷한 제도를 2014년 시행한 뒤 6억호주달러(약 5000억원)의 세수증대 효과를 봤다고 한다. 소득으로 역산하면 약 4조원 규모의 경제활동이 양성화된 것이다.

미신고 역외소득에 대한 자진신고 기한은 오는 3월 말로 다가왔다. 그동안 신고를 하지 못한 사람들은 세금,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고민이 많을 것이다.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갖춰질 정보교환의 강력한 국제적 인프라, 즉 거미줄 같은 감시망을 생각한다면 이번 자진신고는 어차피 밝혀질 잘못을 교정하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과세당국도 자진납세를 한 납세자에게 최대한 관용 정신을 발휘해 주면 좋을 것 같다.

김동수 < 법무법인 율촌 조세그룹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