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맥] 금융완화는 대증요법, 4차 산업혁명 이끌어라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제2의 에클스 실수, 저유가 쇼크, 신흥국 자금 이탈, 유럽통합 붕괴, 중국과 일본 증시 폭락, 북한 지정학적 위험….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위기징후군이다. 극단적인 비관론인 ‘칵테일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칵테일 위기란 영국 재무장관인 조지 오즈번이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처음 언급한 것으로, 특정 사건을 계기로 잠복한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현상을 말한다.칵테일 위기론까지 나오는 것은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는 주력 산업이 탄생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상황을 풀 수 없다는 의미다.

제로 금리, 양적 완화로 대변되는 각국의 금융 완화 정책은 ‘캠플주사’ 효과만 있을 뿐 세계 경제를 장기 침체라는 수렁으로 더 빠지게 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뒤늦은 반성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달 말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45회 세계경제포럼(WEF)의 주제는 ‘제4차 산업혁명의 이해와 영향 그리고 그 대응 방안’이었다. WEF 창시자인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은 “제4차 산업혁명은 이전 산업혁명보다 훨씬 큰 변화 속도와 규모, 강도로 생산 분배 소비 등 전체 시스템을 바꾸는 기회이고 동시에 인간의 본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류의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미래 유망 기술로 가장 많이 거론되고,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있는 분야는 ‘인공지능(AI)’이다. 인공지능이란 인간성, 지성, 학습능력, 추론능력 등 인간의 두뇌작용을 컴퓨터 혹은 기계가 스스로 추론, 학습, 판단하면서 행동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의사가 하는 일 80% 대체 가능

인공지능의 개념은 2차 세계대전 전후로 경제학자, 공학자, 수학자 등 다양한 학자들이 처음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도 1950년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 발표한 <계산기와 지능>과 릭 라이더의 <인간과 컴퓨터의 공생> 논문은 현대 인공지능 연구의 시초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대 말 이후 인공지능은 실험 학문으로 출발했지만 당초 예상이나 기대와는 달리 뚜렷한 접근 방법과 성과가 없어 1980년대까지 침체기를 맞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기계 학습, 로보틱스, 컴퓨터 비전 등 특정 기계 분야에 대해 연구하는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을 중심으로 인공지능 분야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산업의 맥] 금융완화는 대증요법, 4차 산업혁명 이끌어라
최근에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을 중심으로 인공지능을 비즈니스에 접목하기 위한 투자가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구글은 2013년 DNN리서치를, 2014년에는 영국의 딥 러닝 전문기업인 딥 마인드를 시작으로 젯팩, 다크블루랩스, 비전팩토리 등 다양한 인공지능 벤처기업을 인수했다. 또 다른 강자로 인정받는 IBM은 1997년 세계 체스 챔피언인 개리 카스파로프를 이긴 인공지능 플랫폼 ‘딥 블루’의 개발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2011년 발명한 슈퍼컴퓨터 ‘왓슨’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관련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2000명의 개발자로 구성된 인지비즈니스솔루션 사업부를 설립했다.

트레이딩 분야에도 AI 확산

의료산업에서도 인공지능의 역할은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의 방대한 데이터, 실증자료와 세분화된 분석 알고리즘 활용으로 의료 서비스의 정확도와 질을 높이고 과도하거나 불필요한 검사를 제거하게 되면서 인공지능을 이용한 사회 전체의 의료비용 감축 움직임이 빨라지는 추세다.

IBM은 왓슨을 활용해 각종 의학 교과서와 저널의 전문지식을 기반으로 왓슨헬스를 2015년 출범시켜 뉴욕 메모리얼암센터 내의 폐암 진단과 백혈병 치료법 연구, 웰포인트 보험사와 의료진의 치료 계획안에 대한 적절성 판단 여부 분석을 통해 의료산업 분야에서 본격적인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엔리틱은 환자의 X레이,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 등의 메디컬 이미지, 유전자 데이터, 과거 치료 분석을 통해 의료진의 판단을 지원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호주의 메디컬 기업인 캐피톨헬스에서 1000만달러를 투자받고 실제 의학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의사와의 접촉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 등으로 인해 인공지능이 의사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의사가 하는 업무의 80%는 인공지능 컴퓨터 기술로 대체할 수 있어 의료산업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은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투자 자문업, 트레이딩 등 금융서비스 역시 사람의 판단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아 IT 활용도가 낮았지만 최근에는 검증받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이용하고자 하는 금융회사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가는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은 자산관리 업무에 IBM 왓슨을 적용, 우수 고객에게 맞춤형 투자자문과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웰스프런트, 베터먼트 등 로보어드바이저(Robot+Financial Advisor) 신생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이들이 운용하는 자산 규모는 1000억달러에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글로벌 컨설팅업체 AT커니는 5년 뒤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이 2조달러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트레이딩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이 확산될 조짐이다. JP모간의 헤지펀드 자회사인 하이브리지캐피털은 인공지능 스타트업인 센션트테크놀로지와 머신 러닝 기반의 투자시스템 개발을 추진 중이다.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등의 헤지펀드 또한 자체 머신 러닝 투자시스템 개발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온라인 유통산업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몰고오고 있다. 아마존은 생필품처럼 주기적인 교체가 필요한 제품에 대해 단순 버튼 클릭을 통해 구매→결제→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시 버튼’과 음성인식 기반으로 제품을 주문하는 ‘아마존 에코’와 같은 인공지능 머신 러닝 플랫폼을 도입했다. 알리바바는 기존 텍스트 형식의 검색 시스템에서 벗어나 컴퓨터가 사람의 눈처럼 제품 이미지를 직접 인지해 알리바바 내에서 판매 중인 사용자가 원하는 상품을 정확하게 찾아주는 타오바오 비주얼 검색 기능을 출시했다. 넷플릭스는 영화 추천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딥 러닝 기술을 활용, 이미지, 영상 정보 등 다양한 ‘비정형 정보’까지 활용한 콘텐츠 추천 방식을 개발 중이다.

인공지능 표준화도 고려해야

산업별로 인공지능의 적용 속도와 수준에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기계적인 논리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이 판단의 정확성을 올리겠지만 도덕적인 감성에 근거한 인간의 판단과 엇갈릴 경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등 고통도 따를 것이다. 특히 개인적인 딜레마가 사회 전체로 확산돼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표준화 등 관련 규제 도입 과제도 안고 있다.

강호갑 < 중견기업연합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