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행복의 물컵
지난달 미국 파워볼 복권 당첨금 1조9000억원이 3명의 ‘천운을 가진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온 동네가 팔자를 고치고도 한참 남을 돈이다.

막연한 부러움과 함께 문득 “10년 후 그들은 과연 모두 행복할까” 생각이 들었다. 복권 당첨으로 벼락부자가 됐지만 가족들이 갈라지고, 쾌락의 길에 빠져 파산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 행운은 기회를 준다. 하지만 꼭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부러운 사람은 떼돈을 번 사람도, 명예와 권력을 거머쥔 사람도 아니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들이 부럽다. 절반이 빈 물컵을 보고 “반이나 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필자는 본디 긍정적인 것보다 비판적 사고에 익숙하다. 그렇게 태어난 것 같다. 그래서 기업의 문제점을 분석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경영 컨설팅에는 잘 맞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채워진 물’을 보려 해도 ‘빈 부분’이 더 보였다. “행복해지려면 가진 것에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데 말처럼 쉽지 않았다.

성장의 시기였던 1980년대, 당시 중학생이던 내 기억으로는 주변이 온통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구직자보다 구인하는 기업이 많았고, 실력이 있으면 기회가 사람을 승진시켰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더 잘살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 가족도 그랬다. “비록 오늘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노력하면 내일이 더 나을 것”이란 기대로 행복했다.

그때보다 물질적으로 더 많은 것을 가진 지금의 나는 과연 행복한가. 좋은 학교에 입학하고, 좋은 기업에 취직하고 좋은 집과 차를 사도 잠깐의 기쁨일 뿐이었다. 컵을 채웠다 싶으면 어느새 컵이 더 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물컵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행복은 물이 얼마나 차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 채우는 과정에서 온다는 것이다.

긴 설 연휴의 시작이다. 오랜만에 친척들과 만나 “취직했냐” “시집 안 가냐”고 묻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려보면 어떨까. 필자도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간만에 내면과 마주할 생각이다. 평생을 두고 추구할 가치가 무엇인지 탐구도 계속 해볼 것이다. 며칠 쉰다고 결론이 안 날 것은 뻔하다. 그렇지만 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을 대견해하고, 그 과정에서 행복을 찾을 것이다.

최원식 <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 se_media@mckinsey.com >